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성경 지명 원어 설교말씀] 갈멜산 Carmel Mount

두란노 서원 2020. 5. 11.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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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원어 설교말씀 중에 갈멜산을 알아보겠습니다. 갈멜산을 통해서 많은 설교에 적용할 수 있습니다.

 

지명연구 : 갈멜산 Carmel Mount

 

1. 명칭

히브리어 הכרמל(학카르멜)은 관사가 붙은 것으로 '그 정원' 혹은 '그 과수원'을 의미한다.

 

2. 위치

1) 팔레스타인 해안에 돌출하여 나온 산이다.

2) 갈멜산은 갈멜 산맥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지중해에 위치하고 있다.

3) 갈멜산의 이름을 따서 갈멜 산맥이라 부르는데, 갈멜산은 지질학적으로나 지리학적으로나 갈멜 산맥의 일부가 되고 있다.

3. 지질학적 배경

1) 갈멜산은 딱딱하고 구멍이 많은 세노마니아(Cenomania) 석회석으로 형성되었고, 남동쪽으로 약 20.8Km의 길이로 뻗어 있다.

2) 이 산맥은 갑()의 높이가 143m이고 가장 높은 곳이 '에스피아'(Esfia) 근처인데 그 높이가 531m이다.

3) 갈멜산의 북동쪽 경사면은 가파르고 험준하다. 반면에 남서쪽의 경사면들은 완만하여 지중해 해안까지 이르는 길이 나있다.

4) 아직도 이 산의 경사면들에서는 식물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는데, 이곳은 옛날부터 식물들이 무성하게 잘 자라기로 유명하였다.

 

4. 지리적 배경

1) 지리적으로 갈멜산은 쐐기 모양으로 생긴 장벽인데, 이 산은 팔레스타인 해안 평야를 두 부분, 즉 북으로 악고 평야와 남으로 샤돈과 필리스티아 평야로 나누어 놓고 있다.

2) 갈멜산 기슭과 바다 사이에는 이 두 평야 지대를 이어주는 좁은 해안길이 있다.

3) 옛날부터 대부분의 상인들과 군사적 통행은 내륙에 있는 산길을 이용하여 갈멜 산맥을 넘어 이블르암과 다아낙과 므깃도를 지나 욕느암까지 갔던 것으로 보인다.

 

 

5. 역사적 배경

갈멜산은 고립된 지역이어서 역사 시대에는 사람이 거의 살지 않았다. 그렇지만 석기 시대에는 고대인이 갈멜산의 서쪽 경사면에 있는 동굴에서 살았다.

 

6. 성서적 배경

1) 성서 시대에 갈멜산이 특별한 신앙적 중요성을 갖게 된 것은 왕상18:19-40에서 보여 주듯이 엘리야와 바알의 선지자들이 싸운 곳이기 때문이다.

2) 왕하2:25;왕하4:25에서는 엘리사가 영적인 훈련을 쌓기 위해서 갈멜산에 은거한 것으로 나타난다.

3) 성서에서 갈멜산은 아름답고(아7:5) 비옥한 곳으로 자주 언급된다(사35:2렘50:19미7:14).

 

원어설교 : 갈멜산 Carmel Mount

 

갈멜산 כרמל : 카르멜 Carmel Mount

왕상18:20 아합이 이에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보내어 선지자들을 갈멜산으로 모으니라

 

갈멜산은 두로와 인접해 있으며 갈멜산맥 중 가장 높은 산으로 지중해에 돌출하여 위치하고 있습니다. 갈멜산의 원어는 כרמל(카르멜)'포도원'을 의미합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과 대결(왕상18:19-42)하였고 엘리사는 영적 훈련을 받았습니다(왕하2:25)

 

1. 갈멜산의 포도원은 풍요를 상징합니다

갈멜산은 아가서의 표현처럼 비옥하고 풍요로운 곳입니다(아7:5).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정탐을 위해 12지파의 용맹자들을 보냈습니다. 그들이 가나안에서 40일 정탐 후 그 지역의 풍요함을 알리기 위해 가져온 식물이 바로 포도송이입니다(민13:24). 또한 솔로몬 시대의 풍요를 누리며 안연히 사는 것을 나타낼 때도 포도나무 아래서 살았다고 표현합니다(왕상4:25). 이스라엘은 원래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풍요의 상징인 갈멜산에도 가나안 땅에도 비가 오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급기야 3년 반 동안 가뭄이 계속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옥토는 황폐화되고 굶어 죽어 가는 사람들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아합 왕은 이런 일은 엘리야 때문에 발생한 것이라고 단정하여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가뭄의 이유는 자기 아내인 이세벨이 가져온 바알과 아세라 숭배 때문이었습니다.

 

2. 하나님만이 풍요의 근원입니다

하나님은 온 천지가 바알과 아세라 숭배에 몰두하자 이스라엘 백성을 깨우치기 위해서 가뭄을 내리셨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섬길 수 있다면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도 섬겨 양다리를 걸치려고 했습니다(왕상18:21). 겨울이 되면 바알 신이 죽기 때문에 이 세상의 식물도 죽고, 봄이 되어 바알신이 부활하면 생물들도 움트고, 바알과 아세라 신이 교합하면 새로운 생명이 잉태한다는 것이 당시 바알 종교의 원리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 믿음으로 자연을 움직여 더 많은 수확과 풍요를 누리고자 했습니다. 이때 하나님께서 바알은 거짓 신임을 알리기 위해서 갈멜산에서 엘리야를 내세운 영적 전쟁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불로 응답하심으로 모든 풍요의 근원이 자신임을 계시하셨습니다(왕상18:39). 하나님께서는 물질적 풍요(신33:11)뿐 아니라 은혜와 긍휼(엡2:7)이 풍성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의 근원임을 우리가 인정할 때 현재에도 살아계시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간구에도 응답받을 것입니다.

 

3. 우리는 하나님과 바알 중 선택해야 합니다

여호수아는 자신이 죽기 전에 모든 지파를 세겜에 모이게 하고 연설했습니다. 그 연설에서 그는 하나의 결단을 촉구합니다. "여호와를 섬길 것인가? 너희의 거하는 땅의 신을 섬길 것인가? 오늘날 택하라"(수24:15). 우리의 문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는 것보다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겸하여 다른 무엇을 섬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선택했다기보다는 이미 내가 너희를 택하셨다고 말합니다(요15:16).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고 싶으면 섬기고, 하나님 없이도 살 수 있는 그런 선택이 우리에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삶의 목적을 하나님께 두고 하나님의 법에 따라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설교1 : 갈멜산 Carmel Mount

 

갈멜산으로 오라

왕상18:21 엘리야가 모든 백성에게 가까이 나아가 이르되

 

사람은 누구나 세상을 살면서 인생의 극적인 전환기를 맞습니다. 마찬가지로 믿음 생활에도 전환기가 있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인생의 변화를 가져오는 극적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바로 갈멜 산 사건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바알 숭배가 극에 달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엘리야는 우상을 숭배하는 선지자 850명을 상대로 싸워 이들을 물리치고 여호와가 참 하나님이심을 분명하게 선포하였습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과거의 죄를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이제 갈멜 산에서 일어난 놀라운 사건을 보면서 죄악에서 돌이켜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비결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1. 신앙을 회복하라는 명령입니다

1) 우상의 숲을 제거해야 함

갈멜 산은 '나무가 많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이름대로 실제 갈멜 산은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더욱이 사사 시대부터 이곳은 가나안 족속들이 많이 모여 살았습니다. 그래서 숲으로 둘러싸인 갈멜 산은 하나님을 섬기는 처소가 되지 못하고 일찍부터 우상숭배의 처소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가 이 산에서 우상숭배자들을 처단함으로써 우상으로 가득 찬 은밀한 숲을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은혜의 동산으로 만들었습니다. 이와 같이 성도들도 마음속에 은밀하게 숨어 있는 우상숭배의 죄악들을 제거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 은밀한 곳에 복된 말씀의 씨앗을 뿌려야만 합니다.

 

2) 음행의 숲을 제거해야 함

갈멜은 우상 산당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이곳에서는 음행이 성행하였습니다. 원래 가나안 족속들은 우상 제사를 드릴 때 그 의식이 음란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제사를 드린 뒤 여사제들과의 음행을 통해 우상과 일체가 되는 의식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갈멜의 울창하고 푸른 숲은 음행의 숲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는 자들에게 음행은 참으로 가증스러운 죄악이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의 가르침대로 모든 범죄는 몸 밖으로 짓는 것이지만, 음행은 성령의 전(殿)인 거룩한 육신을 더럽히는 죄악이기 때문입니다(고전6:18). 그래서 엘리야 선지자는 음행으로 가득 찬 갈멜 산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신앙 회복의 출발점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2. 참 행복을 추구하라는 교훈입니다

1) 우상에게 갈멜 열매를 주었음

웃시야 임금은 갈멜 산을 포도원으로 만들었습니다(대하26:10). 그만큼 갈멜은 비옥하고 포도 농사가 잘 되었습니다. 하지만 우상숭배로 가득 찬 이곳의 포도는 대부분 우상 신전에 드려질 포도주를 만드는 데 사용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이곳의 포도주로 우상을 섬기고, 육신의 쾌락과 환락을 추구하였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이곳 갈멜 산에서 우상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을 쳐 죽이고 추악한 쾌락과 육신의 즐거움에 빠져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참된 기쁨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실로 참된 기쁨은 주님과 더불어 기뻐하고, 주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것입니다(롬14:8).

 

2) 주님으로 인해 번영해야 함

솔로몬은 갈멜의 초록빛 울창한 숲을 단장한 신부의 아름다운 머릿결에 비유했습니다(아7:5). 예레미야는 갈멜을 번영의 상징으로 비유했습니다(렘50:19). 또 이사야는 갈멜을 풍성함의 대명사로 표현하였습니다(사35:2). 그만큼 갈멜은 아름답고 풍성하였습니다. 하지만 갈멜은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의 장소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오히려 향락과 죄악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주님을 떠난 부요와 풍성함은 결국 사치와 방탕으로 이어집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부요하되 주님과 함께 부요하며, 풍부하되 주님 안에서 풍부해야 합니다. 정녕 주님 없는 번영보다는 차라리 주와 함께 하는 고난을 택함이 성도의 지혜로운 처사입니다(빌4:11-13).

 

3. 함께 기도하며 죄와 싸우는 사람이 되자는 권고입니다

1) 기도의 제단을 쌓아야 함

엘리야 선지자는 우상과 죄악으로 뒤덮인 갈멜 산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거짓 선지자들을 물리치고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분명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이렇게 엘리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물리치고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을 향해 간절하게 부르짖은 결과였습니다. 말하자면 기도의 승리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갈멜 승리의 비결입니다. 참으로 기도만이 신앙을 위협하는 모든 사단적인 세력들을 물리치고 승리를 얻는 비결입니다. 그러기에 성도는 갈멜과 같이 죄악으로 물든 세상을 살면서 결코 기도의 줄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날마다 기도의 제단을 쌓는 것, 이것이 우상의 제단이 범람한 세상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2) 전투적 삶을 살아야 함

성도들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또 다른 비결은 전투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들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갈멜 산에서 대결하여 그들을 물리쳤습니다. 이는 아합 임금조차도 우상을 섬기는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목숨을 거는 행위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는 담대하게 우상 선지자들을 쳐 죽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 드러냈습니다. 이렇게 성도들도 엘리야와 같이 전투적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를 짓게 하는 사단의 세력과 싸워야 합니다. 영적 전쟁을 무서워하고 피하는 자는 결국 사단의 포로가 되고, 죄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갈멜은 비옥하고 아름다운 산이었지만 우상숭배의 처소였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여건이 좋으면 주를 찬양하기보다 죄짓기를 더 즐겨하는 악한 성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거듭난 성도들은 결코 이런 악한 세상 사람들의 습관을 좇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오직 기쁠 때 주님을 찬양하고, 슬플 때 주를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설교2 : 갈멜산 Carmel Mount

 

갈멜 산정의 거룩한 전쟁

왕상18:22-24 …너희는…이름을 부르라 나는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리니

 

인간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라는 말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인류 구속의 역사도 전쟁의 역사입니다. 하지만 이 전쟁은 어느 한 나라가 다른 민족을 집어삼키는 이기적이고, 추악한 전쟁이 아닙니다. 이 전쟁은 인류 구원을 위한, 사단과 싸우는 거룩한 영적 전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흔히 이를 가리켜 성전(Holy War)이라 부릅니다. 본문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전쟁이 나옵니다. 아합 임금 당시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우상 종교를 대적하여 하나님의 유일신 신앙을 지키기 위해 갈멜 산 꼭대기에서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였습니다. 이런 영적 전쟁, 즉 거룩한 전쟁은 오늘날도 성도들이 반드시 싸워 승리해야 할 전쟁입니다.

1. 전쟁의 대상은 죄와 우상으로 범람한 세상입니다

1) 우상숭배로 가득한 세상임

현대 사회를 첨단 과학시대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이런 첨단 과학시대에도 우상숭배는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합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들도 그러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자처하면서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겼습니다. 우상숭배가 얼마나 대단했던지 아합의 식탁에 모인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가 850명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임금의 비호를 받을 정도이니 당시 사회가 얼마나 우상으로 가득 찼는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여기서 보듯이 우상숭배는 불신자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백성 중에도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오늘날도 신자 가운데 30% 이상이 사주팔자, 점, 운세, 궁합 등에 빠져 있는 것은 우상숭배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2) 참 신앙을 위협하는 세상임

엘리야 선지자 당시 북이스라엘은 우상숭배가 만연하였습니다. 신앙의 정절을 지키는 소수의 신자들은 모두 도시를 떠나 시골이나 산으로 피신할(왕상18:4) 정도로 아합 당시 북이스라엘의 신앙은 끊임없이 위협받았습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중 권세 잡은 사단이 지배하는 세상에서는 신앙이 항상 위협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비록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셔서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긴 했지만, 세상 마지막 날 하나님의 나라가 완전하게 세워지기 전까지는 여전히 사단의 훼방이 집요할 것입니다. 이런 신앙 위기의 시대에 성도들은 끝까지 깨어 경성하여 여호와 유일 신앙을 지켜나가야 하겠습니다.

 

2. 전쟁의 전술은 굳센 신앙뿐입니다

1) 타협이 없는 전쟁임

흔히 타협에 능한 자가 세상에서 성공한다고들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거룩한 영적 전쟁에는 결코 타협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영의 세계에서는 중간 지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에게 속하고, 사단에게도 속하는 그런 영역은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거짓 선지자들을 갈멜 산에 모았습니다. 그리고는 목숨을 건 거룩한 전쟁을 치렀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단을 대적하여 싸우는 성도의 올바른 삶의 자세입니다. 혹여 전쟁이 힘에 겹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자녀 된 성도들에게는 타협이란 절대 있을 수 없는 방법입니다. 우는 사자와 같이 두루 다니며 끊임없이 삼킬 자를 찾는 원수 마귀와 절대 타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타협하는 자는 바로 마귀의 밥이 될 뿐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천국에 들어갈 때까지 끝까지 원수들과 싸워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2) 하나님이 친히 싸우시는 전쟁임

성도들은 흔히 자신이 사단을 대적하여 싸우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사단을 대적하여 싸우는 거룩한 전쟁의 주체는 하나님입니다. 왜냐하면 거룩한 전쟁은 인간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전쟁이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성도가 사단을 대적하여 싸울 때 혼자 두지 않으시고, 당신이 친히 개입 하사 성도를 대신하여 싸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 선지자가 거짓 선지자 850인을 상대하여 싸울 때 당신이 친히 개입하사 엘리야를 대신하여 거짓 선지자들을 물리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앞에서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는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임재하여 이스라엘 백성 대신에 거룩한 전쟁을 수행하셨습니다(출14:14).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싸워 주십니다. 그러니 이보다 더 쉬운 전쟁은 없는 것입니다.

 

3. 전쟁의 최후 승자는 오직 성도들이 될 것입니다

1) 보장된 승리임

엘리야는 8501의 싸움에서 승리하였습니다. 그리고 거짓 선지자들을 갈멜 산 아래 기손 시냇가로 끌고 가서 쳐 죽였습니다.. 이는 결국 거룩한 전쟁에서 실패한 자는 처절한 죽음에 이르게 된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동시에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성도의 승리는 완전하게 보장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듯 대장 되신 주님을 따르는 십자가 군병된 성도에게는 승리만 있을 뿐입니다. 왜냐하면 최후 승리를 얻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장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지금은 사단이 부분적으로 기력을 발휘하나 궁극적으로 원수 사단은 무저갱의 철장 속에 사로잡히고 영원한 불못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이런 최후 승리의 날을 사모하며 끝까지 대장되신 주님만을 의지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2) 하나님께서 존귀와 영광을 받으심

성도의 승리는 하나님께 큰 영광이 됩니다. 엘리야가 우상 선지자들과의 대결에서 승리하자 그토록 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여호와 한 분뿐임을 고백하였습니다(왕상18:39). 우리도 거룩한 싸움에서 승리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이럴 때 하나님께서도 거룩한 싸움에서 승리한 성도들을 영화로운 자리에 높이 앉혀 주실 것입니다.

 

성도들은 주의 나라에 이를 때까지 끊임없이 거룩한 전쟁을 수행할 십자가 군병입니다.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으로 무장하며 깨어 경성 하는 전투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엡6:11). 이것이 거룩한 전쟁에서 승리하는 비결입니다.

설교3 : 갈멜산 Carmel Mount

 

갈멜산에서의 신앙고백

왕상18:39 모든 백성이 보고 엎드려 말하되 여호와 그는 하나님이시로다…

 

세상에는 많은 종교가 있습니다. 이 가운데는 내세를 믿는 고등 종교도 있고, 저급하고 미신적인 하등 종교도 있습니다. 이렇게 세상의 많은 사람들은 다양한 종교를 통해 여러 신들을 믿습니다. 하지만 기독교는 결코 다른 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오직 우리에게는 유일신 하나님 한 분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많은 우상을 섬겼지만, 결국에는 천하에 하나님은 여호와 한 분뿐임을 깨달았습니다. 성도들 가운데도 아직 유일신 신앙을 가지지 못한 자들이 있다면 본문을 통해 참된 유일신 신앙을 가지기 바랍니다.

 

1. 천하에 홀로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스스로 존재하심

백성들은 하나님을 가리켜, '여호와'라 불렀습니다. '여호와''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입니다(출3:14). 이는 결국 하나님은 누구의 손에 의해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은 만물이 시작되기 전부터 스스로 존재해 계셨고, 또한 지금도 존재해 계시며, 세상 마지막 날까지 영원토록 존재하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소위 ''이라 부르며 믿고 섬기는 것은 모두 사람들의 사색에 의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성도는 여기에 결코 속아서는 안 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세상 만물의 창조주이시자 한 분뿐인 유일신이십니다.

 

2) 홀로 하늘과 땅을 조성하심

하나님은 유일하신 분이십니다. 세상 만물은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실로 하나님과 상관없는 우주 세계는 있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크고 위대한 우주 천체도 하나님의 손에 의해 만들어졌습니다. 반대로 바다 깊은 곳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도 하나님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그분은 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십니다. 동시에 하나님은 만물의 질서를 변경시키기도 하십니다.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불을 내려 엘리야가 쌓은 제단의 제물을 태우셨습니다. 그리고 36개월 동안 가물었던 북이스라엘에 비를 내려 메마른 대지를 적셔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이 불을 내리고, 또 비를 내리는 등 만물의 운행을 주관하시는 것은 오직 그분만이 유일하신 신이요, 유일하신 창조주가 되심을 보여주는 증거가 됩니다. 성도들도 이런 창조 신앙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2. 유일한 구원자요 심판자 하나님이십니다

1) 구원자이신 하나님

많은 사람들이 종교를 통해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지극한 복락에 이르기 원합니다. 엘리야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그래서 이들은 바알과 아세라 신을 섬겼습니다. 하지만 이 우상들은 아무런 힘도 없었으며, 구원자도 되지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갈멜 산에 그들이 쌓은 제단을 불태울 능력조차 없었습니다. 이런 무능한 우상은 사람들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오직 하나님만을 찾으라고 권면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을 여호와요, 유일한 신으로 경배하였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결코 우상이나 세상 종교는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을 베푸시는 유일한 신이십니다(행4:12).

 

2) 심판자이신 하나님

엘리야 당시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긴 것은 우상을 섬기지 않으면 큰 화가 미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늘의 비와 이슬을 주관하는 신이 바알인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 신을 섬기지 않으면 농사도 짓지 못하고 큰 벌을 면치 못하는 것으로 여겼습니다. 요즈음 세상에도 이런 어리석은 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세상의 참 심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천하 세상에 어떤 존재도 감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을 다스리지는 못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어떤 우상, 권력자, 세상의 어떤 수단도 두려워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입니다. 오직 구원하기도 하고 벌하기도 하시는 하나님만을 경외해야 합니다.

 

3. 영광 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1) 찬양과 경배받기를 원하심

갈멜 산에서 엘리야의 기도가 응답되는 것을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였습니다. 이들은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만이 참된 신이심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았는데도 모두 무릎 꿇고 하나님을 경배하였습니다. 실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오직 당신만을 경배하고, 당신께만 영광을 돌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이 다른 것들을 신처럼 여긴다면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무서운 죄악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의 기자는 호흡이 있는 자마다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가르쳤습니다(시150:6).

 

2)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기 원하심

하나님은 성도들의 삶을 통해 영광 받기를 원하십니다. 입술로는 열심히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삶은 세상 중심적이라면 이는 결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아닌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심지어 먹는 것, 마시는 것조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하였습니다(고전10:31). 이렇게 주님이 이끄시는 데까지 가고, 세우시는 곳에 멈추는 하나님 중심적인(Deocentric) , 하나님은 성도들의 이런 삶을 통해 크게 영광 받으십니다..

 

엘리야 당시 사람들은 세상에 많은 신들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에 이들은 하나님과 우상을 동시에 섬기며 그분과 우상 사이에서 방황하는 불신적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엘리야를 통해 갈멜 산에서의 이적을 본 뒤 오직 하나님만이 유일한 신임을 고백했습니다. 예수의 십자가 공로를 경험한 축복받은 우리도 영원히 갈멜 산의 고백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설교4 : 갈멜산 Carmel Mount

 

주의 성산으로 올라가라

왕하4:17-37 …드디어 갈멜 산으로 가서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엘리사가 사역할 당시 북왕국 이스라엘은 아합 왕의 아들이요, 아하시야의 동생인 여호람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주전 852-841). 여호람은 왕위에 즉위한 초기에 바알 우상을 제거하려고 애쓰는 등 개혁 정책을 펼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여호람의 개혁은 실패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아합 왕 이래 만연된 바알 숭배가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러한 때 암흑시대의 한 줄기 빛같이 아름다운 신앙의 삶을 산 한 여인이 있습니다. 그녀가 바로 갈멜 산의 엘리사를 찾아 올라간 수넴 여인입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사의 예언대로 얻은 아들이 죽자 가장 먼저 엘리사를 찾아 갈멜 산을 올랐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정으로 볼 때 갈멜 산은 여호와 신앙이 유지되는 보루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1. 하나님의 생명 역사가 있었습니다

1) 승리의 역사가 있었음

수넴 여인은 갈멜 산에 오를 때에 갈멜 산에서 이루어진 믿음의 승리를 기억했습니다. 갈멜 산은 엘리야 선지자가 우상을 섬기는 거짓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승리를 거둔 장소였습니다. 이때 엘리야 선지자는 850명의 거짓 선지자들을 상대하여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하나님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하여 믿음의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수넴 여인은 갈멜 산으로 향하면서 바로 엘리야의 승리, 믿음의 승리를 기억했던 것입니다. 이는 수넴 여인이 뛰어난 분별력을 가진 신앙인이었음을 보여줍니다. 수넴 여인은 엘리야의 승리 이후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사모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아들의 죽음이라는 결코 넘을 수 없는 인생 문제에 직면하여 주의 성산을 기억한 것입니다.

 

2) 구원의 역사가 있었음

수넴 여인은 갈멜 산에 오르면 자신의 죽은 아들이 살아나리라는 확신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갈멜 산은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있었던 처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갈멜 산에서 엘리야 선지자와 바알 선지자가 대결할 때 능력으로 역사하사 엘리야가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이 승리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이 아닌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하였고, 수넴 여인도 이런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기억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은 아들이 죽었을 때 사람은 할 수 없어도 구원의 하나님은 반드시 죽은 외아들도 살릴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였습니다. 수넴 여인은 구원의 하나님을 믿었기에 아들의 죽음 앞에서도 결코 두려워하지 않고 부활을 확신할 수 있었습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였습니다

1) 하나님의 뜻을 구함

수넴 여인은 아들의 죽음을 남편에게 알리지도 않고 먼저 갈멜 산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찾았습니다. 수넴 여인은 아들의 죽음이라는 큰 슬픔 중에도 가장 먼저 하나님, 하나님의 사람, 주의 성산을 생각하였습니다. 사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분께서 다시 어린 아들을 불러가시니, 수넴 여인은 아들을 잃은 슬픔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당황했던 것입니다. 이런 연유에서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성산(聖山)으로 가서 하나님의 뜻을 듣기 원했던 것입니다. 살다 보면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 성도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중보자가 되시는 그리스도께 나의 모든 문제를 내놓고 간구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함

수넴 여인은 자식을 가질 수 없는 조건이었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아들을 얻었습니다. 이때 엘리사 선지자가 수넴 여인의 집에 유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들려주었습니다. 이런 연유로 해서 수넴 여인은 아들이 죽자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가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에 만연되어 있었지만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극진히 대접했고 하나님의 귀한 말씀을 듣게 되었습니다. 곧 믿음은 들음에서 난다고 했는데, 수넴 여인은 바로 엘리사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능력을 보았습니다. 그녀가 다시 아들의 죽음이라는 난제에 직면하여 하나님의 사람을 찾은 것도 이 같은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여 구하기 위함이었습니다.

 

3. 부활의 역사가 있었습니다

1) 순종하는 기도를 드림

수넴 여인은 엘리사 앞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는 아름다운 기도를 드렸습니다. 여인은 애초부터 자식을 기대하지 않았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셨음을 고백하며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하나님 곁으로 돌아간 것을 원망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섭리에 겸손히 순종하며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였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먼저 그분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 하는 자세를 보여줍니다. 그리고 아들의 죽음이라는 인생으로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를 앞에 두고 먼저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하고 감사하였습니다.

 

2) 죽은 자의 살아남

먼저 하나님의 섭리에 순복 한 수넴 여인은 그분이 주신 외아들이 다시 사는 놀라운 이적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은혜로 아들을 얻었고, 다시 그분의 은혜로 죽은 아들이 살아나는 이적을 경험한 것입니다. 이처럼 먼저 하나님을 찾고 그분을 의뢰하는 자는 수넴 여인과 같은 이적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특별하고, 특수한 상황이라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는 부활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께서는 이미 구원받은 성도를 대신하여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이는 부활의 역사가 결코 멀리 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수넴 여인은 무엇보다도 먼저 하나님을 의뢰하고 하나님의 사람과 주의 성산을 찾아가서 인생 문제를 해결 받았습니다.. 수넴 여인의 믿음은 당시 이스라엘 상황에서 보아도 두드러진 것이요, 오늘날의 험한 세상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얻는 비결을 제시하는 아름다운 신앙입니다 성도들은 과연 어떤 방법으로 인생 문제를 해결 받고 있습니까? 그것이 세속적 방법이 되어서는 결코 은혜를 입을 수 없음을 알아야겠습니다.

 

설교5 : 갈멜산 Carmel Mount

 

갈멜 삼림의 양 떼처럼

미7:7-14 원컨대…갈멜 속 삼림에 홀로 거하는 주의 기업의 떼를 먹이시되

 

'갈멜 속 산림'이란 표현은 이스라엘의 포로 생활을 의미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갈 곳은 양들을 잡아먹는 맹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양들은 목자의 보호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이와 같은 환경을 비유로 해서 미가 선지자는 불의와 불신앙으로 인해서 극에 달한 아하스 시대에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될 것임을 선포했습니다. 하지만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중이라 할지라도 그분의 보호를 간구했습니다. 궁극적으로 선민 이스라엘을 회복시켜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의 이 같은 메시지와 기도는 불의한 세상 가운데서 성도가 안전하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비결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1. 죄에 대한 철저한 회개가 있어야 합니다

1) 공의의 법을 거스른 죄에 대한 회개

미가 선지자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을 향해 회개를 촉구하였습니다. 당시 유다 사회는 지도층의 수탈로 인해 백성들의 생활이 너무 피폐하였습니다. 그 압제가 얼마나 심했든지 미가 선지자는 "백성의 가죽을 벗기고 뼈에서 살을 뜯어 낸다"고 표현할 정도였습니다(미3:2-3). 이런 행위는 실로 하나님의 공의를 훼손하는 행위요, 하나님의 형상을 짓밟는 죄악이었습니다.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진노를 피할 길은 오직 죄를 회개하는 것뿐이었습니다..

 

2) 사랑의 법을 거스른 죄에 대한 회개

세상에 타락한 종교보다 더 추악한 것은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미가 선지자 당시 유다의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 추악한 자들이었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성직(聖職)을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다고 꾸짖었습니다. 즉 이들은 돈벌이가 되면 사랑과 평화를 선포하고, 그렇지 못하면 전쟁을 선포하여 사회에 불안감을 조성하였습니다(미3:5,11). 그리하여 이들에게서는 참된 사랑과 화평을 찾아볼 수 없었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사역자가 상처 입은 심령을 위로하고 사랑으로 감싸주어야 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이를 악용하여 불안감을 조장하고 돈벌이 수단으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심판이 선고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우리 위해 십자가를 지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기억하며, 그리스도의 사랑을 저버린 것을 회개하고 나아가 이 사랑의 정신으로 상처입은 심령을 위로하는 사명을 잘 감당해야 하겠습니다.

 

2. 보호와 인도에 대한 간구가 있어야 합니다

1) 지팡이로 인도할 것을 요청함

미가 선지자는 하나님을 향해 주의 지팡이로 유다 백성들을 갈멜 산으로 인도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지팡이는 목자의 필수품으로 양 떼를 돌보는 데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주의 지팡이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상징적으로 의미한다고 하겠습니다. 불의와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친 들에 버려진 양 떼와 다를 바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절실하게 필요했습니다. 오늘날 사단이 언제 공격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사는 성도들에게도 주의 지팡이는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2) 잔잔한 물가로 인도할 것을 요청함

본문에서 "주의 지팡이로 인도해 달라"는 미가 선지자의 요청은 또 다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것은 평화와 안식이 있는 잔잔한 물가로 인도해 달라는 뜻이었습니다. 목자의 지팡이로 인해 잔잔한 물가로 이끌려간 짐승들은 잔잔한 물가에서 넉넉하게 물을 먹고 목자의 지팡이 아래서 휴식과 안식을 취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입은 자는 이런 평안과 안식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포로로 끌려갔으나 그 안에서 다시 약속의 땅으로 돌아오기까지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인도하심이 항상 함께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험한 세상을 유배지라고 생각해 볼 때 우리를 인도하시는 목자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품에 안전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우리 성도들을 품어 주셨습니다.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시고 때를 따라 먹이시는 하나님의 은총은 오늘날도 주 안에 있는 우리 성도들에게 임하고 있습니다.

 

3. 구원의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1) 죄를 회개해야 함

갈멜 삼림의 양 떼처럼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를 약속하셨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장차 베들레헴에 메시아가 올 것을 예언하였습니다(미5:2).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회개하고 정결하게 된 선민 이스라엘은 메시아를 만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구주로 오신 주님은 회개하고 당신을 영접하는 자를 만나 주십니다. 물론 주님은 만인에게 구세주가 되십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는 회개하고, 주님 만나기를 사모하는 자를 만나 주시고 영원한 생명을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을 만나는 비결은 먼저 회개하고 사죄의 은총을 입는 데 있습니다. 불순종, 불신앙의 상태로는 영원한 생명에 참여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2) 구원의 은총을 간구함

본문에 언급된 미가 선지자의 간구는 영적으로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간구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즉 갈멜 산에서 풍성한 꼴을 먹게 해 달라는 간구는 결국 불의한 세상으로부터의 구원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이 땅은 영원한 구원을 주지 못합니다. 잠시 압제에서 벗어나고 해방감을 맛볼 수는 있지만 이 세상에 속한 이상 다시 또 다른 문제로 인해 사로잡히고 구속을 당합니다. 그러기에 정녕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은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없습니다. 오직 참 구원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우리는 영원한 구원을 맛보게 됩니다.

 

험한 세상 가운데서 성도가 실족하지 않고 온전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와 보호에 의지하는 것입니다. 미가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갈지라도 그곳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간구했습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태에 처해 있을지라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목자 되신 주의 보호와 인도하심이 항상 함께 하기 때문입니다. 진정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 아래 거하며 그의 나라를 소망하는 복된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조직 신학 연구] 그리스도의 비하(卑下) 신분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조직 신학에서 그리스도의 비하에 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그리스도의 비하(卑下) 신분 인간 구속 사역을 위하여 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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