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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지명 설교말씀] 갈림 Galim

두란노 서원 2020. 5. 11.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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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신 여러분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설교말씀 중에 갈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갈림 Galim

 

1. 위치

성경 고고학자 올브라이트(Albright)는 갈림을 아나타(Anata) 서쪽 0.8Km 지점인 현재의 키르벳 카쿨에 위치한 것으로 보았다. 이곳은 베냐민 지파의 땅이다.

 

2. 명칭

גלים(갈림)이란 히브리어 גל(갈)의 복수형으로 돌이나 오물더미 혹은 샘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3. 성경적 배경

성경에서 갈림에 대한 언급은 단 두 곳에서 나타난다. 첫번째 언급은 사울이 다윗과 불화한 후에 자기의 딸 미갈을 발디에게 넘겨주었는데, 이 발디의 고향이 바로 갈림이었다(삼상25:44).

갈림에 대한 성서의 또 다른 언급은 사10:30에 나타나 있는데 이것은 앗수르 군대의 침략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사10:28-32). 앗수르 군대가 예루살렘에서 북동쪽으로 약 30마일 떨어진 아얏에 이르렀을 때 그들은 먼저 유다의 지배에 있던 베냐민 지파의 영토를 짓밟았다. 그들은 미그론을 지나 믹마스에서 꼭 필요하지 않은 짐들을 버리거나 다른 평탄한 길로 나르게 하여 그들의 짐을 놓아 두었다. 그리고는 깊고 험한 골짜기인 믹마스의 영을 통과하였다.

그들은 게바에 이르러 유숙하면서 사방에, 특히 남쪽 지방으로 공포심을 퍼뜨려 사울의 기브아 거민이 도망가도록 하였다. 이사야 선지자는 바로 이것을 바라보면서 갈림에게 외칠 것을 호소하였다. 갈림 가까이에 있는 라이샤에게는 자세히 들으라는 메시지를, 예루살렘 북쪽으로 불과 1시간 15분 거리에 위치한 아나돗(Anata)을 향해서는 가련하다고 비탄하였다.

 

원어설교 : 갈림 Galim

 

갈림(גלים): 갈림 Galim

삼상25:44 사울이미갈을 갈림에 사는 라이스의 아들 발디에게 주었더라

 

갈림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인 사울이 왕으로 부름받았을 때 거주하던 곳(삼상10:26)과 가까우며, 또 아나돗 성읍에도 인접한 마을입니다. 그리고 사울의 딸 미갈의 두 번째 남편인 발디(발디엘)의 고향이기도 합니다(삼상25:44). 이곳은 오늘날 아나돗의 서쪽 부근에 위치한 키르베드 카쿨(Khirbet Kakul)과 동일한 곳으로 추정되고 있습니다. גלים(갈림)이란 '무더기, 돌무더기, 돌의 퇴적, 샘들'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 지명입니다. 오늘날 갈림은 바로 이같은 원어적 의미를 반영이라도 하듯 돌무더기가 되어 있습니다.

 

1. 인간의 영화는 허무한 것입니다

גלים(갈림)은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했던 사울의 고향입니다. 따라서 일국의 왕을 배출한 이곳은 가나안 영토 내에서도 영예롭고 자랑할 만한 곳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하나님의 기대에 전혀 미치지 못하는 신앙 인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특히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지 못하는 조급함과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되고 맙니다(삼상15:17-23). 천하를 호령하던 권세는 땅에 떨어지고 마치 하찮은 돌무더기같이 되고 만 것입니다. 이처럼 인간의 영광은 유한한 것으로, 하나님이 인정치 않으면 금방 돌무더기처럼 쇠퇴하고 맙니다(왕하19:25). 그러기에 인생을 의지하고 인간의 힘을 의지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습니다(사2:22).

 

2. 그리스도께서는 허무함을 해결하셨습니다

흔히 성지(聖地)에는 불의한 자의 주검을 묻어두기 위해 돌무더기를 쌓는 경우가 있었습니다(삼하18:17). 사실 גלים(갈림)은 왕을 잃은 슬픔의 성읍이요, 아내를 빼앗겨버린 절망의 성읍이었습니다(삼하3:13-16). 이런 측면에서 '돌무더기'는 인생의 허무와 죽음과 슬픔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인생의 허무함을 해결하셨습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사 영생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왕이신 하나님을 잃어버린 인생, 천국이라는 삶의 목표를 상실해 버린 인생들이 있습니다. 이들의 거처가 바로 이 גלים(갈림) '돌무더기'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불신과 상실의 땅 갈림에 거할 것이 아니라 축복의 처소,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3. 성도는 주 안에서 영원한 소망을 갖습니다

갈림은 겉으로 보기에는 돌이 많아 쓸모 없는 땅이었습니다. 더구나 인간적인 자랑까지도 사라져 버린 소망 없는 성읍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쓸모 없이 보이는 돌을 통해서도 귀한 샘물이 솟구쳐 흐르도록 섭리하십니다(민20:8).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 인생들에게 비록 겉으로 보기에는 척박하고 고난스런 환경을 주신 것 같지만, 실상은 그 환경 속에서 샘물과 같은 청량함과 삶의 소망을 허락해 주고 계십니다. 우리는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아니고서는 고난이 많은 이 광야 세상에서 하루도 생존할 수 없음을 명심해야 합니다.

 

갈림은 인간의 영욕(榮辱)의 본질을 일깨워 주는 유서 깊은 성읍입니다. 실로 인간이 스스로 세운 영화와 자랑은 헛되고 무가치할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로 사는 자에게는 영원한 기쁨과 영광이 주어질 것입니다.

 

설교1 : 갈림 Galim

 

심판의 경고를 받은 도시 갈림

사10:30 딸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찌어다 라이사야 자세히 들을찌어다…

예루살렘 가까이 있던 갈림은 예루살렘으로 침공하는 앗수르 군대를 예루살렘보다 먼저 맞이해야 하는 곳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가 "갈림아 큰 소리로 외칠지어다"라고 한 이유도 바로 갈림의 위치와 관련이 있습니다. 갈림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곳으로 그곳에 위험이 닥쳤을 때 먼저 그 위험을 감지할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갈림은 앗수르의 침공을 받았을 때처럼 심판의 징조가 나타날 때 이를 알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갈림은 예루살렘과 마찬가지로 죄악에 젖어 있다가 심판의 징조를 깨닫지 못했습니다. 결국 갈림은 그 기능을 다하지 못했고, 파괴되어 이름의 뜻대로 '폐허가 된 돌무더기'가 되었습니다.

 

1. 죄악으로 눈이 먼 상태에 있었습니다

1) 주의 공의를 저버림

갈림은 유다의 성읍으로, 유다 백성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 앞에 큰 죄를 지었습니다. 갈림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저버렸습니다. 지도자들은 백성들의 재물을 수탈하였습니다. 재판관들은 뇌물을 받고 불의한 자들의 편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 고아, 과부 등 소외된 자들은 살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유다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심판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을 보내어 유다 백성의 죄악을 지적하고 경고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오직 공법을 물같이 정의를 하수같이 흘릴지로다"라고 촉구하였습니다(암5:24). 하지만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공의를 무시했습니다. 죄악으로 인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없게 된 갈림 사람들은 앗수르의 침공을 목전에 두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의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결과 갈림은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받아 폐허가 되고 말았습니다.

 

2) 우상을 의지함

갈림 사람을 비롯한 유다 백성들의 또 다른 죄악은 우상숭배에 있었습니다. 당시 유다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고, 그것을 모실 산당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열심으로 우상을 숭배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에게 우상을 버리고 당신에게로 돌아오도록 경고하셨습니다(사2:8-9). 우상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유다 백성들은 끝까지 우상을 버리지 아니하고 그들을 열심으로 섬겼습니다. 특히 갈림 사람들은 우상으로 인해 눈이 어두어져 하나님의 경고를 들을 수 없었고, 심판의 징조를 볼 수 없었습니다. 우상숭배에 빠진 갈림, 육신은 물론 영혼까지 썩은 갈림은 더이상 파수꾼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2. 하나님의 심판은 철저하게 임하였습니다

1) 안일한 자들에게 임한 철저한 심판

갈림 사람들은 죄로 인해 육과 영이 무디어져 있었지만 그래도 큰 불편없이 잘 살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이미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심판에 대한 두려움도 없었습니다. 오늘날 흔히 악인의 번영을 볼 수 있는 것처럼, 갈림도 세상에서 부유하게 잘 살았습니다. 이같은 사실을 오늘에 적용해보면 하나님께서 죄인을 심판하지 않으시고 내버려 둔다고 오해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죄인을 내버려 두시는 것은 할 수 있는 한 죄인이 회개하고 구원에 이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기 위함입니다(벧후3:9). 그러기에 우리는 죄인이 당장 심판받지 않는다 하여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또 하나님은 능력이 없어 죄인을 어찌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도 안됩니다. 그러기에 죄인된 자들은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시는 인내를 악용하지 말아야 합니다.

 

2) 파수꾼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임한 심판

하나님은 죄인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오래 참으시지만 끝까지 인내하지는 않습니다. 일단 심판의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철저하게 심판하십니다. 심지어는 택한 백성 유다조차도 나라를 잃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갈 정도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피난처가 되지는 못하였습니다. 갈림은 심판이 임박한 순간에도 회개하지 않았고, 이스라엘의 파수꾼 역할도 제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 갈림을 비롯한 유다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멸망하였습니다. 갈림의 돌무더기는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잘 말해 줍니다.

3. 갈림은 하나님의 긍휼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1)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

갈림은 하나님의 심판중에서도 죄를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갈림 사람들의 무지는 진노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를 얻지 못한 채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흉악한 죄라도 용서받지 못할 죄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떤 죄로든지 당신 앞에 나와 철저하게 뉘우치며 눈물로써 회개하는 자를 반드시 용서해 주십니다. 심지어는 당신의 독생하신 아들을 세상에 보내사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시기까지 죄인을 사랑하시고 용서해 주기를 원하시는 분이 하나님입니다. 문제는 죄인이 진실된 마음으로 철저하게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비느냐, 그렇지 못하냐에 달린 것입니다. 갈림은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고, 회개하지 않음으로 심판을 면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2) 끝까지 회개하지 않은 갈림

하나님은 회개하는 죄인은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전의 다치고 상한 부분까지 완전하게 치유하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모습은 갈림을 비롯한 유다 백성들이 70년이 지난 뒤에 바벨론 포로에서 본토로 귀환한 데서도 잘 나타납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본토로 귀환한 유다 백성들이 예루살렘에서 훼파된 성전과 성벽을 재건할 수 있도록 모든 여건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이렇듯 과거에 비록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또 징계를 받고 있는 중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을 바라보며 회개하는 자는 죄를 용서받을 뿐만 아니라 다시 이전 상태까지 회복하게 됩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회개하는 자에게는 아낌없는 사랑과 은총을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갈림처럼 끝까지 회개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 공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갈림의 돌무더기는 자기 역할을 다하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며 하나님의 날을 사모하지 않는 자들은 심판이 가까이 임해도 이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폐허가 된 갈림과 같은 운명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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