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성경 지명 강해 설교말씀] 게데스 Qudesh

두란노 서원 2020. 5. 14. 19:14
반응형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성경 지명 강해 설교말씀 중에 게데스에 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게데스 Qudesh

 

1. 명칭의 의미

1) 의미 : '거룩한 장소'라는 뜻이다.

2) 이유 : 가나안 정복 이전에 성소가 있었던 장소이다.

2. 유다 자손의 성읍

1) 유다 자손 기업의 남쪽 경계에 위치한 성읍으로(수15:23) 카데스와 같은 곳이다.

2) 가데스 바네아 혹은 가데스와 서로 교차적으로 사용되던 지명이다.

 

3. 가나안인의 성읍

1) 위치 : 갈릴리 동편에 위치하고 있다.

2) 가나안 족속의 왕족 도시였으나 납달리 지파에게 기업으로 주어졌기 때문에(수19:32,37) 납달리 게데스로 불린다.

3) 갈릴리 게데스라고도 불렸으며 도피성들 중의 하나로 구별되었다(수20:7).

4) 후에는 레위인에게 속하는 게르손의 후손들에게 주어졌다(대상6:76).

cf)게르손 : 레위의 세 아들 중 하나로 야곱과 그의 가족이 애굽으로 이주하기 전에 낳았다. 게르손은 립니와 시므이 두 아들을 두었다.

5) 역사

주전 733년에 디글랄 빌레셀 3세에 의해서 정복당하고 도시민들은 포로로 끌려갔다.

요나단 마카비가 테메드리오를 여기서 격파했다.

요세푸스 때는 페니키아인들(베니게인들)에게 속했다.

4) 훌레 호수 북서쪽의 텔 콰레스와 동일한 지역으로 간주되고 있다.

5) 두로 동쪽으로 36Km, 하솔에서 북서쪽으로 11Km지점이다.

 

4. 잇사갈 지파의 성읍

1) 정복 : 여호수아에 의해서 정복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수12:22).

2) 분배 : 잇사갈 지파에게 할당된 성읍이었는데 그들이 레위 지파의 게르손 자손에게 주었다(대상6:72).

3) 기시온으로 표시하고 있는 성경도 있으며(수19:20수21:28) 잇사갈의 게데스는 기손을 잘못 읽은 데서 생긴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cf)기시온 : 잇사갈의 경계선 지방으로 레위인에게 주어졌다. 대상6:72에는 이 명칭 대신 게데스라는 지명을 사용하고 있는데 이는 기록한 서기관들의 잘못으로 추측된다. 두 장소가 동일시될 수 없기 때문이다.

4) 아벨은 므깃도에서 약 4Km 남쪽에 위치한 텔-아부-케데스(Tell Abu-Qudes)라고 주장한다.

그렇지만 잇사갈 지파의 기업이 이토록 남쪽까지 내려왔을지에 대해서는 의문시되고 있다.

 

원어설교 : 게데스 Qudesh

게데스 קדש : 케데쉬 Qudesh

삿4:6 …게데스에서 불러다가…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게데스는 '거룩한 장소'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곳은 게데스 납달리(삿4:6), 갈릴리 게데스(수20:7수1:32), 게데스(수12:22수19:37) 등으로 불렀습니다. 또 이곳은 도피성 중의 하나로 구별되었으며, 이 때문에 레위 지파인 게르손 사람들이 거주지로 얻은 성읍입니다. 아울러 바락이 태어난 곳이기도 합니다.

 

1. 거룩함은 죄악과의 싸움을 필요로 합니다

게데스가 도피성으로 구별되어 거룩한 하나님의 제사장에게 준 것은 우연히 된 일이 아닙니다. 거룩한 장소를 얻기까지는 많은 싸움이 었었습니다. 바락과 드보라가 가나안 왕인 시스라와 대항하여 싸우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집결시킨 장소가 게데스입니다(삿4:1-10). 이 성읍 근처에 헤벨의 장막이 있었는데 이곳에서 시스라는 헤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죽음을 당했습니다. 또 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이 성읍을 취하고 그 백성을 앗수르로 옮겨갔습니다(왕하15:29). 게데스라는 거룩한 성읍의 이름이 그렇듯이 거룩함은 이와 같이 끊임없는 싸움에서 이긴 역경의 산물입니다. 죄악과의 싸움에서 패하게 되어 앗수르에게 포로가 되었듯이 죄악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죄악과의 싸움에서 이겨 거룩하게 구별된 도피성으로 많은 죄인들이 몰려오듯이, 죄악과의 싸움에서 이겨 거룩하게 사는 성도들 삶의 모습은 많은 사람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게 될 것입니다.

 

2. 구별된 삶은 하나님 백성의 표시입니다

도피성은 억울하게 인권을 유린당한 사람들과 생명에 대한 부당한 위협을 받고 있는 사람을 위해 만든 제도입니다. 그리고 그 성에는 구별된 제사장 족속이 살았습니다 거룩하다는 것은 구별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 자체가 본질적으로 선해서 구별된 것이 아니라 구별되어서 선하다고 취급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구별의 주권은 하나님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구별된 하나님 백성은 구별되도록 선택해 주신 분을 닮아가도록 살아야 합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는 은혜를 통해 구별되었으니 이제는 삶까지도 거룩하게 되어야 한다는 말씀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어진 존재로서 그분의 모습을 그대로 우리의 삶에서 재현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3. 성령의 내주함으로 거룩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 있음으로 해서 거룩해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완전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고 해도 본성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으며, 죄와 의 사이에서 치열한 투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해 사도 바울은 육신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을 대립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거룩하게 사는 길은 성령의 내주 하심에 자신을 완전히 순종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죄악과의 내적인 싸움에서 이기게 하실 뿐만 아니라, 세상의 죄와 싸우는 외적인 싸움에서도 승리하도록 그의 백성에게 능력을 더하십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령의 충만함을 더욱 간절히 사모하고 그분의 인도하심에 내어 맡기면서 승리하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겠습니다.

 

설교1 : 게데스 Qudesh

도피성에 나아가는 자

수21:32 납달리 지파 중에서는 살인자의 도피성 갈릴리 게데스와 그 들을 주었고

 

인간은 완전한 존재가 아니라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상황과 환경에 따라 본의 아니게 실수와 과오를 범하기도 합니다. 이와 같은 고의가 아닌 과실은 사회와 법이 그 정상을 참작해서 처리합니다. 도피성은 고의가 아닌 과실로 사람을 죽인 자를 보호하기 위해 설치된 성읍입니다. 도피성은 도망하는 자가 하룻길에 도달할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곳에 피신하면 합법적인 재판을 받을 수 있어서 피의 복수를 면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도피성을 거룩한 장소이자,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있는 장소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도피성으로 피해야 될 자는 어떤 사람이며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알아보며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죄인임을 인식하는 자입니다

1) 살인한 죄인이 들어갔음

도피성에는 우발적인 살인을 저지른 자가 복수자들로부터 생명을 보호받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도피성에는 살인하지 않은 자는 들어갈 필요가 없었습니다. 또 고의로 살인한 자는 도피성에 들어갈 자격이 없었습니다. 오늘날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지 않는다면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경고합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할 것"(요일1:8)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은 자기 죄를 지고 그리스도 앞에 나와 그 죄짐을 풀어놓고 죄 사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2) 죄사함이 필요한 자임

우발적인 살인은 살의를 가지지 않았지만, 오살한 경우를 일컫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비록 그것이 전적으로 자기 잘못만은 아니라고 할지라도 죄를 지은 것입니다. 때문에 죄 사함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도피성에 들어가는 자는 바로 죄사함이 필요한 자들입니다. 오늘 우리 모두는 아담의 죄를 전가받은 죄인들입니다. 우리 모두는 죄사함이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피성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 죄 사함을 받고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아야 하겠습니다.

 

2. 절박한 자입니다

1) 두려움에 떠는 자임

살인한 자는 살인의 충격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또한 복수를 두려워합니다.. 도피성이 살인한 자가 하룻길에 이를 수 있는 곳에 위치한 이유도 바로 이 같은 절박함을 말해 줍니다. 곧 살인한 자는 절박한 심정으로 사력을 다하여 도피성에 한 달음에 도달하였을 것입니다. 도피성에 피하는 자는 그만큼 절박한 사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절박한 가운데 있습니다. 내일 도피성에 가야지 하고 미룰 수 없는 상태입니다. 오늘 목숨이 다 한다면 도피성도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께 촌음을 아껴서, 절박한 심정으로, 사단의 유혹을 뿌리치고 나와야 합니다.

 

2) 죄에 눌려 있는 자임

조지 채프먼이란 영국의 시인은 ", 비록 그것이 잠잔다 할지라도 그것은 살인자에게 결코 죽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살인한 자가 비록 타인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스스로 자신의 범죄를 잊을 수 없어 괴로워한다는 의미입니다. 살인한 자는 죄에 짓눌려 있는 사람입니다. 그는 스스로 죄책감과 살인의 충격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죄에 시달리는 인생의 모습이 이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살인한 자가 도피성을 향해 한달음에 뛰어가는 것처럼 죄에 시달리는 인생도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 앞에 절박한 심정으로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도피성에서 죄 사함을 받은 것처럼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만이 우리 인생의 죄를 해결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3. 죄를 고백하는 자입니다

1) 장로들에게 고백해야 함

도피성 입구에는 장로들이 지키고 있어서 도피성에 들어오는 자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습니다. 이때 살인한 자는 죄를 빠짐없이 그리고 거짓 없이 고백해야 했습니다. 만약 장로들에게 죄를 고백하지 않거나 거짓으로 둘러대면 도피성에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곧 죄의 고백은 도피성에 들어가는 최종 관문이었습니다. 우리들 역시 생명을 보호받기 위해서 도피성을 향해 나아갈 때, 우리 죄짐을 하나도 빠뜨리지 않고 다 고백하여야 할 것입니다.

 

2) 궁극적으로 그리스도 앞에서 죄를 고백해야 함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라고 하였습니다(요일2:2). 그리스도께서 도피성이 되신 이유도 우리 조짐을 맡아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죄인 된 인생이 그리스도께 나아갈 때, 죄의 고백이라는 관문을 거친다는 것은 단순히 죄지은 사실을 털어놓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죄 사함을 간절히 원하는 것, 곧 죄를 고백하는 자의 겸손한 자세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죄인된 인생도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 앞에서 떨리는 심정으로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예수님께서는 죄에 짓눌린 인생을 보혈의 능력으로 품어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도피성은 그 취지에서나 역할에서나 죄인 된 인류의 도피성 역할을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예표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치 구약 시대 죄인들이 도피성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호 받은 것처럼, 우리들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품 안에서 죄를 용서받고 생명을 보호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와 허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엡2:1)은 도피성이 되신 그리스도께 나아가 죄를 고백하고 죄사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죄사함을 받은 성도들은 도피성이 되신 주 안에서 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설교자료

◈ 도피성

피의 복수(고엘 제도)를 방지하기 위한 제도로 부지중에 살인한 자를 보호하기 위한 은신처. 레위인들이 이 성을 관할하였는데, 게데스, 세겜, 헤브론, 베셀, 라못, 골란 등이 있었다. 부지중에 살인한 자는 도피성에 피하여 당시 제사장이 죽을 때까지 도피성에 머물렀다.

아리카라족의 도피처 : 북미 미주리 주의 아리카라족은 마을 중앙에 주술 오두막집이라는 장소가 있어서 이곳에서는 어떤 피도 흘리지 말아야 했다.

인도의 도피처 제도 : 인도에는 도피 마을이라는 장소가 있어서 이곳에 피하면 사람은 물론 동물까지도 보호받았다고 한다.

③ 바롯세(Barotse) : 중앙 아프리카 지역에 만들어진 도피처. 이곳에 피신한 자는 마을 촌장에게 죄의 용서를 간청하고, 용서받으면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④ 에르트나툴룽가(ertna tul-unga) : 오스트레일리아 중부의 아툰타족의 도피처. 이곳은 신성불가침 지역으로 범죄자가 도피해도 잡아가지 못했다. 심지어 이곳에서 자라는 식물들도 손상을 입히면 안 되었기 때문에 도피하는 자도 주의해야만 했다고 한다.

◈ 게데스의 현재

텔 카데스(Tell Qades)로 후레 호수 북서쪽에 위치한다. 마카비 시대에 가데스는 마카비와 그 형제 데메드리오의 대 격전지라고 전해지기도 한다(마카베오상11:63).

 

◈ 고엘 제도

친족 : 이스라엘의 가족 관계에서 친족이란 개념은 부족 최초의 아버지를 통해 그 후손들의 모든 가계 사이를 가리킨다. 아주 가까운 친족을 제외하고 남자들은 친족 가운데서 아내를 맞이해야 했다. ② 형사취수제(兄死取嫂制) : 고엘 제도의 하나로,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그 형수와 결혼하여 후사를 잇게 하는 제도. 혈통 잇는 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고대 가부장제 사회에서 발견되는 이 관습은 장자의 기업을 잇는 것과 관련하여 매우 독특한 성격을 띤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스라엘에서는 친족이 파산하였어도 친족이 나서서 그 잃은 재산을 되찾아 놓아야 했다.

피의 복수자 : 피살된 자와 가장 가까운 친족이 죽은 자를 위해 복수해야 할 의무. 근친자만이 피의 복수가 허락되었으며(24:16), 우발적으로 죽인 자에 대해서는 도피성 제도를 통해 구제했다.

 

◈ 납달리 지파

이름의 뜻은 '씨름하는 자'. 야곱과 라헬의 여종 빌하 사이에서 난 아들. 납달리 지파는 넓고 길쭉한 땅을 분배받았는데, 가나안 땅 중에서 가장 비옥한 지역이었다. 납달리 지파에는 하솔과 가데스가 주요 성읍이었는데, 원주민을 가나안 정복 당시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고 있다가 사사 시대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전 정복했다. 특히 하솔과 가데스를 잇는 도로는 두로와 시돈으로 연결하는 주요 무역로로 이곳을 통하여 많은 경제적 이익을 취할 수 있었다.

 

설교2 : 게데스 Qudesh

게데스에서 온 도움자

삿4:6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납달리 지파는 게데스를 중심으로 분배받은 기업을 정복하였습니다. 여호수아 당시 게데스는 가나안 원주민들이 정착해 있었으나 납달리 지파에 의해 정복당하였습니다. 그 후 약 100년이 흐른 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일함과 불순종에 빠졌고, 가나안 원주민들은 세력을 규합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솔 왕 야빈이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침략한 것도 바로 이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불순종에 빠진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야빈의 군대를 사용하신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사사는 여선지 드보라였는데, 그녀는 야빈의 군대를 맞아 게데스 출신의 바락에게 도움을 청했습니다.

 

1. 바락은 여사사 드보라를 도왔습니다

1) 사회적 관념을 뛰어넘었음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자는 남자에 비해 소극적이고 종속적인 위치에 있었습니다. 심지어 여자는 이스라엘의 인구 조사에서도 제외되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회적 통념이 지배하는 사회에서 여선지를 돕는다는 일은 남성의 자존심을 꺾는 일로 간주되었습니다. 하지만 바락은 드보라의 요청에 순종하여 전쟁터로 나갔습니다. 바락은 여선지 드보라를 여인으로 보지 않은 것입니다. 바락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임을 인정하였습니다. 바락은 드보라의 요청을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순종한 것입니다. 이처럼 신앙은 사회적 관념을 초월하게 합니다. 다른 사람의 이목을 의식한다든지 체면 따위를 생각하면 신앙생활에 많은 제약이 따릅니다. 그러므로 신앙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 외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앞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사를 도왔음

바락은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신 여호와 하나님의 뜻을 알았습니다. 바락은 여선지 드보라만 본 것이 아니라 드보라를 사사로 세우신 강권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섭리를 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자를 돕는 자는 사람을 볼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을 세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람을 보고 돕다 보면 때로 실망하기도 하고, 때로 상처를 입기도 하지만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고 사역자를 돕는 사람은 결코 실망하거나 상처를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무슨 일을 하든지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행하기 때문입니다(고전10:31). 게데스 출신의 바락은 이같은 하나님 중심의 신앙을 소유한 사람이었기에 사회적 통념을 깨고 여선지 드보라의 조력자로 충성을 다한 것입니다.

 

2.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야빈의 군대를 진멸했습니다

1) 명예욕을 버렸음

바락은 위기에 처한 이스라엘을 구하기 위해 전쟁터로 나가면서도 영광을 얻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삿4:9). 이러한 사실을 알고도 출정한 바락은 명예욕이 없어서가 아니었습니다. 바락도 인간적인 명예욕과 영광을 안고 싶은 욕망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여자 사사 밑에서 전쟁에 참여한 남성으로서 이러한 욕심이 없었을 리 없습니다. 하지만 바락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모든 인간적인 욕심을 버렸습니다. 사역자를 돕는 자는 개인의 욕심이나 명예욕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해야 하는 것이 사역자나 조력자의 공통된 의무입니다. 바락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이라는 신앙으로 인간적인 욕심을 이겨낸 것입니다(롬11:36).

 

2)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싸웠음

바락은 전쟁터에 여선지 드보라도 함께 가기를 청하였습니다(4:8). 이는 바락이 드보라를 돕는 하나님께서 동행하시어 도와주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드보라를 볼 때 그녀를 세우신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바락은 드보라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의지하여 전쟁터에 나간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과 행하심에 전적으로 의탁하여 싸움을 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전쟁터에서도 바락은 시종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한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 영적 전쟁터에 나아가야 할 하나님의 정병들, 곧 성도들이 본받아야 할 태도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 불의와 싸우는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분을 온전히 믿고 따라야 이길 수 있습니다.

 

3. 바락은 신앙의 영웅으로 기록되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로 기억됨

바락은 드보라의 요청에 의해 사사의 조력자로 등용되었습니다. 하지만 드보라가 바락을 세운 것은 인간적인 판단으로 세운 것이 아닙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바락을 조력자로 세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락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바락을 이스라엘의 사사 중 하나로 기록하고 있으며 신앙의 선배요, 믿음의 일꾼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히11:32).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은 비록 당대에 이름을 얻지 못할지라도 길이 기억되며, 후세 사람이 알아주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상급이 예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 뿐입니다(고전4:2).

 

2) 하나님을 의지한 사사로 기억됨

바락은 인간적인 편견이나 욕심을 버리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하여 사사 드보라의 조력자로서 충성을 다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수행할 때에도 오직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순종했습니다. 바락은 하나님을 의지하여 순종함으로 하나님께서 이루신 놀라운 승리를 경험하였습니다. 사역자를 돕는 사람은 하나님만을 의지할 때 그분이 이루시는 크고 기이한 일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락처럼 후세에 하나님을 의지한 신앙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신앙의 영웅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그는 남녀를 막론하고 충성을 다하며,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합니다. 사역자를 돕는 자도 이와 같아야 합니다. 우리는 사역자를 도와 영적 전쟁에 나갈 하나님의 군사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는 충성된 성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설교자료

◈ 여선지 드보라

이스라엘 사사 중 유일한 홍일점 여사사. 출애굽한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주전 1280-1216년경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가나안 족의 침입을 막아냈다. 그중 가장 큰 세력이었던 가나안 왕 야빈의 공격을 바락과 더불어 물리치고 약 40년간 사사로 이스라엘을 통치했다.

 

◈ 바락

하솔 왕 야빈이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예속하고 있을 때, 사사 드보라의 요청으로 야빈을 물리친 사사. 그는 하나님께서 드보라를 통해 주신 시스라 군대를 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이스라엘을 구하고 40년간 이스라엘을 통치한 사사이다. 바락은 가데스 출신으로 드보라가 사사로 있을 때 이스라엘 군대의 총지휘관으로 있었다.

 

◈ 드보라의 노래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가데스에서 물리친 후 드보라가 부른 승전가. 가장 오래된 히브리 시 중 하나로, 보존 상태가 매우 좋아서 실제적인 언어 연구에 도움이 되는 시이다. 또한 히브리어 고문체 연구에도 많은 도움이 된다. 뿐만 아니라 노래에 포함된 이스라엘의 부족 관계에 대한 정보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 하솔

납달리 지파에 할당된 요새화 된 성읍. 가나안 정복 당시 가나안 왕 야빈의 도읍지. 여호수아는 야빈과 그 동맹 세력을 쫓아내고 하솔을 불태웠다. 드보라 시대 하솔의 군대 장관 시스라가 이곳에서 군대를 일으켜 이스라엘을 위협했다. 바락은 시스라 군대를 쳐부수고 하솔을 이스라엘 영토로 귀속시켰다. 이후 하솔은 솔로몬 시대에 다시 요새로 복구되었다.

◈ 여성의 위치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자의 위치는 매우 미약했다. 부인은 남편을 호칭할 때 '아돈'(주님)이라고 불러야 했다. 십계명은 집이나 밭처럼 여자도 남편에게 속한 소유물로 계산하여 남편에게 쫓겨날 수 있지만 이혼을 청구할 수는 없고 다만 남자의 후손이 끊어졌을 때에만 고엘 제도를 통해 시동생을 남편으로 맞을 권리가 있었다.

처녀의 서원이나 유부녀의 서원도 남편의 동의를 구해야 했던 이스라엘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는 노예와 다를 것이 없었다. 그러나 노예처럼 사고팔 수는 없었으며 남편이 아내를 내쫓았을 때는 이혼장이 그녀를 보호해 주었다.

비슷한 시기의 애굽이나 바벨론 여성들 중에는 가장의 권리를 부여받는 경우도 있어 같은 시대 이방의 여성의 위치보다도 못한 것이었다.

 

◈ 게데스의 전략적 위치

게데스는 갈릴리 호수에서 두로를 잇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 이곳을 거치지 않고는 이스라엘의 남쪽 도성으로 들어올 수가 없었다.

게데스 북쪽에 위치한 하솔에서 군대를 일으킨 시스라도 게데스에서 결전을 치러야만 이스라엘을 공격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바락도 게데스에서 시스라를 막아야만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설교3 : 게데스 Qudesh

시스라의 죽음

삿4:21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하솔에서 군사를 일으킨 야빈의 군대는 엄밀한 의미에서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한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히다가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한 여인, 곧 하벨의 아내 야엘의 손에 죽음으로써 의외로 어이없는 결말을 맞고 말았습니다. 곧 시스라의 죽음은 한 나라의 군대 장관이 하나님의 징계를 받았을 때 얼마나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가를 잘 보여준다 하겠습니다.

 

1. 안전하다고 믿었던 게데스에서 죽었습니다

1) 친구 집에서 죽임을 당했음

시스라는 바락의 일차 공격을 받고 부하들을 모두 잃었습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한 시스라는 친구인 헤벨의 장막으로 피신하였습니다. 하벨의 집에 도착하자 시스라는 위험에서 벗어났다는 안도감에 젖어 금시 깊은 잠에 빠져들었습니다. 시스라는 하나님의 군대에 쫓기면서 인간적인 친분 관계에 의지하여 생명을 보전받으려고 한 것입니다. 이점이 시스라의 오산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시스라가 믿고 안심했던 그 친구의 집에서 죽임을 당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칼날은 결코 피할 수 없습니다. 혹 친한 친구 집에 숨을지라도 친구가 돌변하여 죽일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사람의 운명은 오직 하나님께서 어떻게 역사하는가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들은 가장 안전한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2) 여인에게 죽임을 당했음

시스라를 죽인 사람은 어이없게도 여인이었습니다. 이십여 년 동안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철병거 700승으로 무장했던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믿었던 친구의 부인에게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벨의 아내 야엘은 시스라를 장막으로 인도하여 안심시킨 후 장막 말뚝과 방망이로 시스라를 잔인하게 죽였습니다. 야엘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사악한 자를 징계하시는 심판의 대행자가 되었습니다. 비록 여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들어 사용하시자 담대하고, 철저하게 임무를 수행하게 된 것입니다. 야엘의 행동이 신앙에 근거했다는 점은 드보라의 축복에서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곧 야엘은 야빈과 우호 관계에 있던 남편의 입장보다 먼저 하나님을 위한 결단을 내림으로써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은' 여인으로 칭송받게 되었습니다(삿5:24). 우리는 연약한 피조물에 지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될 때는 그분의 권능에 힘입어 강해지는 것입니다.

 

2. 그릇된 부모의 기대를 무너뜨렸습니다

1)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걱정함

시스라의 어머니는 야엘의 손에 죽은 줄도 모르고 아들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삿5:28-30). 부모는 회갑 맞은 아들이 들에 나갔다 돌아오지 않아도 걱정하는 법입니다. 전쟁터에 아들을 내보낸 시스라의 어머니는 밤잠을 못 이루면서 아들을 걱정하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시스라는 어머니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포악하게 행했던 시스라는 부모 앞에서 큰 불효를 저지르고 만 것입니다. 죄로 인해 징계를 받는 일은 자신에게뿐만 아니라 그 가족, 특히 부모에게 큰 불효를 저지르는 것입니다.

2)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그릇된 기대였음

시스라의 어머니는 아들을 걱정하면서도 아들이 큰 공을 세워 승전가를 부르며 돌아오기를 기대하였습니다. 아들이 어떤 처지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어머니는 시스라의 죽음을 모른 채 승리하고 돌아올 아들을 그리워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부모의 그릇된 기대는 결코 성취될 수 없습니다. 여기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이 합당한 진리에 위배되는 부모의 기대나 사랑은 맹목적인 것에 불과합니다. 때로 잘못된 부모의 기대가 성취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심판 날에는 진리에 위배되는 것들 모두가 수포로 돌아가고, 부모와 자식 간에도 반목과 분쟁이 일어날 것입니다. 단 하나의 이유, 그들이 진리에 위배된 삶을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수 없는 것입니다(눅21:16).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섭리와 진리에 위배되는 삶을 경계해야 합니다. 오직 그분이 말씀하신 진리의 삶을 사는 길만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의 모습입니다.

 

3.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1)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었음

드보라는 하나님께서 야빈의 군대와 그 군대 장관 시스라를 이스라엘의 바락 군대에게 붙이셨다고 하였습니다(삿4:7). 곧 시스라의 죽음은 이미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요, 이미 정해진 비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징계하시기 위해 하솔 왕 야빈과 그 군대 장관 시스라를 사용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임을 깨닫지 못하고 사악한 죄악을 거듭하여 비극적인 종말을 초래하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악인의 멸망은 하나님께서 정한 일이요, 그 날은 짐작하기 어려우나 급하고 강하게 임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자의 결행이었음

하솔 왕 야빈은 철병거로 무장한 정예 군대를 자랑하였습니다. 또한 군대 장관 시스라도 당시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철제 무기와 강력한 군대, 그리고 시스라와 같은 용사로 인해 교만하고 잔학했습니다. 야빈의 군대가 전쟁에서 질 것이라고는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전쟁의 승패는 결코 철제 무기나 용사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달려 있습니다. 곧 여호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아니면 불순종하느냐에 따라 그 승패가 좌우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 순종하고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한 여인 야엘의 손에 용맹한 군대 장관 시스라는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멸하시기로 정하신 자는 징계를 결코 면할 수 없습니다.

 

시스라의 비참한 죽음은 한 여인의 신앙에 따른 결단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징계였다는 점에서 많은 교훈을 줍니다. 하나님 앞에서 악인은 설 자리가 없습니다. 우리는 시스라의 죽음이 그 자신의 죄악 때문에 생긴 비극이었음을 늘 상기해야 할 것입니다.

 

설교자료

◈ 시스라

하솔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여호수아 시대 이스라엘은 하솔을 쳐서 멸하고 성을 불태웠었다(수11:1-10). 그후 하솔 왕 야빈이 다시 일어나 세력을 규합하고 군대 장관 시스라를 세워 이스라엘을 공격한 것이다. 하지만 시스라는 다볼 산에서 기다리던 바락에게 참패하고 야빈의 친구인 헤벨의 집에 도피했다가 그 아내 야엘의 손에 죽음을 당했다.

 

◈ 헤벨의 아내 야엘

이름의 뜻은 '야생의 염소', '산양'이다. 겐 사람 헤벨의 아내.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를 죽임으로써 드보라의 노래에서도 높이 평가되고 있는 여인. 야엘은 시스라가 에스드라엘론 평원에서 이스라엘의 바락에게 패한 후 자신의 왕 야빈의 친구인 헤벨의 집에 피신하여 오자 선대 하는 듯하다가 깊이 잠들자 장막 말뚝을 박아 죽게 했다. 이 일은 드보라의 노래에 기록되어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서 칭송되었다.

 

◈ 철병거

철제 무기로 무장한 마차, 혹은 철제 마차. 고대 전투에서 철제 무기를 사용하는 것은 전략이나 전술 못지않게 승리의 관건이었다. 사사 시대 이스라엘은 철제 무기를 사용하지 않았다. 따라서 철제 무기로 무장한 시스라 군대에 대항하기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대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전쟁을 주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다.

 

◈ 시스라의 교만

철제 무기로 무장한 시스라는 이스라엘 군대를 하찮게 보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시스라는 바락이 다볼 산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기손 강에 진을 치고 바락을 포위하였다. 하지만 드보라는 바락의 이 같은 전술을 이미 꿰뚫어 보고 다볼 산에 이스라엘 군대를 매복시킨 후 기손 강 유역의 평지로 시스라 군대를 유인했던 것이다. 더구나 드보라는 기손 강의 범람을 이용하여 시스라 군대를 쳐부수었기 때문에 시스라 군대는 물에 빠져 당황하는 사이에 참패하고 만 것이다.

 

◈ 드보라의 지휘

드보라는 시스라 군대가 기손 강에 진을 친 것을 확인한 후 이스라엘 군대를 지휘하는 바락에게 '일어나라'고 지시하였다. 드보라의 단호하고 확신에 찬 명령은 여인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인도하심을 믿는 이스라엘 지도자의 명령이었다.

 

◈ 하나님의 심판 도구

하솔 왕 야빈은 이스라엘이 정복해야 할 가나안 원주민이면서 선민 이스라엘을 괴롭힌 왕이다. 물론 가나안 정복 당시 하솔은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가장 강성한 나라였다. 하지만 하솔 왕 야빈이 선민 이스라엘을 침공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강성한 나라라는 '힘의 논리'로만 설명할 수 없다. 왜냐하면 야빈의 침공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징계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심판 도구였기 때문이다.

 

 

[유대 랍비 히브리 의미 해석] 김멜(ג)

안녕하세요. 오늘도 두란노 서원을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오늘은 유대 랍비들이 히브리어 알파벳 김멜을 해석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히브리 문자의 비밀 ג‘김멜’(3)  (상형 :

drn153.tistory.com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