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성경 지명 원어 설교문] 데마 Tema

두란노 서원 2020. 9. 20.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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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성경 지명 원어 설교문 중에서 데마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지명연구 : 데마 Tema

 

1) 히브리어로는 תימא(테마)이다.

2) 데마는 이스마엘의 아들이다(창25:15대상1:30). 또한 이 이름은 아라비안 족을 이룬 그의 후손들과 현재 북서 아라비아(사21:14렘25:23)에 있는 그들의 고향인 테이마(Teima)를 말한다.

3) 아카바에서 동남동으로 약 200마일, 메디나에서 북북동으로 약 200마일 떨어져 있는 오아시스인 현재 테이마와 동일한 곳이다.

4) 두 개의 대로가 교차하는 곳에 자리하고 있어 대상들이 이곳에서 쉬어 갔다.

2. 성경에서의 언급

1) 사막의 긴 거리를 여행하는 것으로 언급되고 있는 데만의 대상들이(욥6:19) 실제로 여행했던 도시가 데만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2) 데마의 거주자들이 그들의 피난민이 된 형제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도록 명령하는 21:14의 신탁은 아마도 주전 738, 앗시리아의 디글랏 빌레셀 3세의 군사 행동을 말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데마는 조공을 바침으로 파멸을 면할 수 있었다.

3) 데마의 거주민들과 근처의 부족들에 대한 예레미야의 예언은 그 지역에 대한 바벨론 느부갓네살의 군사 원정을 말하는 것으로 추측된다(렘25:23).

4) 바벨론의 마지막 왕인 나보니두스(Nabonidus)는 데마에 특별한 저장고를 세웠던 것 같다. 주전 552년에 그는 데마를 향하여 군사 원정을 하여 데마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모두를 살육하고 완전히 그 도시를 다시 세우고 재이주시켰다.

5) 나보니두스 왕은 아마도 10년 동안 그곳을 그의 거주지로 삼았다. 수년 동안 데마로 물러나 있던 그는 그의 아들 벨사살(Belshazzar)에게 그의 대리 통치자로 바벨론을 다스리게 하였다.

 

3. 데마와 나보니두스와의 관계

1) 나보니두스가 데마에 왜 그렇게 오랫동안 머물렀는지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명백하지 않다. 아마도 애굽과 동맹을 맺고자 하는 의도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왜냐하면 애굽은 신흥 페르시아 왕국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하게 남아 있는 동맹군이었기 때문이다.

2) 이것이 아니라면, 바벨론의 사제단들과 끊임없이 싸우고 있는 바벨론을 반대하여 커다란 종교 중심지를 세우기를 원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3) 어느 경우도 그의 시도는 성공하지 못했다. 주전 540년경에 페르시아의 고레스가 아라비아의 모든 지역을 정복하였고 바벨론도 1년 후에 항복하였다.

 

4. 유물

주전 6세기 내지 5세기경, 법적인 문제를 다루는 루브르(Lovvre)에 있는 데마 비석(Teima Stele)은 이 비석문에 인용된 이름들의 세계적인 명성 때문에 더 유명하다.

 

원어설교 : 데마 Tema

 

데마  : תימא 테마 Tema

사21:14 데마 땅의 거민들아 물을 가져다가 목마른 자에게 주고

데마는 이스마엘의 아들로 북서 아라비아에 있는 그의 고향을 지칭합니다(렘25:23). 이 오아시스는 대상이 묵어 가던 중요한 장소였습니다. 데마는 ימא(얌마)에서 유래된 것 같으며 그 뜻은 '바다, 큰 강'입니다.

 

1. 세상은 갈증에 허덕입니다

작렬하게 내리쬐는 태양과 모래에서 뿜어나오는 열기가 가득한 사막은 인간의 지쳐버린 생활과 같습니다. 숨이 턱턱 막히는 한낮의 도심처럼 인간의 희망은 막혀 있습니다. 갈증나는 세상에서 갈증을 없애고자 이리 뛰고 저리 뜁니다. 데마는 바로 이런 인간들에게 오아시스가 되고자 했습니다. 모든 대상들에게 사막을 횡단하며 지친 다리를 쉬고 피로한 마음을 적시는 오아시스가 있듯이 데마는 인간 내세의 한복판에서 시원한 샘물이 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데마의 오아시스는 심판받은 아라비아를 위로할 수 없었습니다. 상처도 싸매주고 낙망한 가슴에 위로도 되어 주고 싶었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갈증을 채워준다는 대리 종교의 결과입니다. 이곳에 우리의 목을 축이고 몸을 담가도 근본적인 갈증은 해결할 수 없습니다.

 

2. 주님만이 세상의 오아시스입니다

데마는 대상들이 묵어 가던 오아시스가 있던 곳이었으나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자 아무 쓸모가 없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은 여전히 갈증으로 허덕입니다. 사마리아의 수가 여인은 남편을 다섯 번이나 바꾸었습니다. 그래도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이런 여인에게 예수님은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을 주겠다고 하십니다(요4:14). 인간은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고자 다른 사람을 의지합니다. 그러나 그에게도 곧 실망해 버립니다. 인간은 누구나 의지하고 싶고 사랑받고 싶으나, 다른 사람의 의지처가 되고 사랑을 줄 수 있는 힘은 없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인간의 의지가 되시고 아낌없는 사랑을 베푸는 분으로 오십니다. 그래서 모든 갈증에 허덕이는 사람들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샘물이 되어 주셨습니다. 주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셔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흐를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요7:37,38).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께 우리의 모든 욕구와 갈증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3. 우리도 주님 품을 떠나면 목마르게 됩니다

오직 주님으로부터 영원히 마르지 않는 샘물이 솟아납니다. 그런데 인간은 물 없는 샘을 찾아가고(벧후2:17), 생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을 버리고 스스로 웅덩이를 팝니다(렘2:13). 그러나 그 웅덩이는 물이 채워지지 않는 웅덩이입니다. 이렇듯 인간은 목말라 하고 갈증을 느낄 때 물 없는 샘으로 달려갑니다. 그리곤 더욱 큰 갈증으로 목말라 합니다. 하나님께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샘을 마른 땅 되게 하시고, 마른 땅을 샘이 되게 하십니다(시107:35). 주님은 샘물 근원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분이십니다(사49:10). 그리고 생명수 샘이 있는 곳으로 우리를 초대하십니다(계7:17). 이 모든 것은 여호와를 경외할 때 가능합니다(잠14:27). 하나님만이 기쁨의 근원이요, 사랑의 근원이요, 안전의 근원입니다. 오아시스의 물은 인간 갈증을 일시적으로 해갈하지만, 예수는 인간의 모든 갈증을 말끔히 없애시는 생명의 오아시스이기에 우리는 그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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