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사도행전 9장 설교문] 성령의 기적(행 9:32-43)

두란노 서원 2020. 3. 27. 12: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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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사도행전 9장 설교문 중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기적이라는 말씀으로 여러분과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성령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 것을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보면 베드로가 두 가지의 성령의 이적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두가 베드로의 힘으로 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성령의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만약 성령의 역사가 사람의 힘으로 된다면 그것은 사람의 능력으로 간주하고 교만하여질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하시는 것입니다.

 

과거에 있었던 성령의 역사 함을 우리도 지금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얼마나 하나님의 능력을 사모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모하면 성령은 오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노력하지 않고 우리가 부르짖지 않고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느낄 수가 없고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33 :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르짖으라 명하십니다. 그리하면 너희가 알지 못하는 것의 비밀을 보여주신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크고 비밀한 것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하면 우리에게 각각 계획하신 일을 보여주시고 그대로 우리에게 행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에 사로잡혀 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과 얼마나 가깝게 지내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먼 사람이 있습니다. 기본적인 예배와 기본적인 것을 함으로 나는 하나님을 만났다고 생각하는 성도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큰 착오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도 아주 친한 사람이 있는 반면에 어느 정도 알고 지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렇게 아는 정도가 천차만별이라는 것입니다. 그럼 우리가 하나님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매일 찾아오는 사람은 하나님과 아주 친한 사람이요 어쩌다가 찾아오는 사람은 그냥 그냥 아는 사람일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인생을 살아야 합니까?

 

사람의 관계에서도 아주 친한 사람과는 서로 모든 이야기를 나누고 나의 고민을 상담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도움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별로 친한 사람이 아니면 어딘가 모르게 일이 생겨도 말을 못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하나님과 친하면 우리의 모든 고민을 하나님께 아뢸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친한 관계가 되지 않으면 우리는 바리새인들과 같이 형식적인 외형적인 기도에 치우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것이 우리의 현실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으니까 아주 사소한 문제도 예수님께 아뢸 수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하나님께 모든 것을 아뢰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릴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역사를 피시기 위해서 필요한 사람을 만나게 하시는 것을 오늘 본문의 베드로의 사역을 통해 알 수가 있습니다. 베드로는 애니아라는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그 사람은 중풍으로 병이 들어 팔 년 동안 누워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는 왜 베드로를 그곳에 보내셔서 이 병자를 만나게 했을까요? 그것은 복음의 전파를 위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병자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쳐주었습니다. 이것은 기적이었습니다. 사람은 너무나 미련한 존재입니다. 구원이 예수님에게 있다고 해도 자기의 교만 때문에 잘 믿지를 못합니다. 그런데 자기가 눈으로 보고 체험하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베드로를 통해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의 이름으로 병을 고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능력입니다. 인간은 능력이 없습니다. 만약에 인간이 그런 능력이 있으면 자기의 영광만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본문의 말씀에

 

베드로가 가로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하신대 곧 일어나니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세상의 어떤 이름으로도 이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세상의 다른 신의 이름으로 불러도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귀신이 물러가고 병이 낫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5 : 14-16 “너희 중에 병든 자가 있느냐 저는 교회의 장로들을 청할 것이요 그들은 주의 이름으로 기름을 바르며 위하여 기도할지니라 믿음의 기도는 병든 자를 구원하리니 주께서 저를 일으키시리라 혹시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사하심을 얻으리라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하나님께서는 병든 자가 있으면 서로 기도하며 간구 하라 하십니다. 그러면 병을 낫게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허공에 치는 메아리에 불과한 것입니다. 우리는 서로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려울 때일수록 더욱 힘있게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의인의 간구는 역사 하는 힘이 많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내가 병을 낫게 해준다 그러나 너희가 구해야 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에게 구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구하지 않으면 우리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구해야만 우리는 성령의 기적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누구에게 유익이 있습니까? 물론 우리에게 유익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령을 위해 기도하고 복음을 전파하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에 룻다와 사론에 사는 사람들이 다 그를 보고 주께로 돌아가니라 이것은 하나님의 전폭적인 능력이었습니다.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병자가 살아난 것을 보고 그들은 주님께로 돌아온 것입니다. 죄인이 다시 회개하고 주님께로 와서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주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것은 죽었던 자가 다시 주님께로 와서 살아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십니다. 그래서 베드로를 통해 예수님은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 시대에 예수님께서는 여러분을 통해 일을 하십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살아 계셔서 지금 이 시간에도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과거에 성령의 역사가 끝났다고 한다면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지금 교회가 부흥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이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모든 교회는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힘으로 성령으로 덧입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충만한 자가 되려면 우리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는 삶은 죽은 삶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도하지 않으면 매일 밥을 먹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육신의 일을 위해 육신의 생명을 위해 열심히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결국 헛된 것에 불과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량의 밥을 먹으면 불필요한 살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정량의 밥을 먹고 먹지 말아야 할 것들을 자꾸 먹으니까 우리는 살이 쪄서 결국 다이어트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은 꼭 필요한 영양분을 공급받으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몸만 가지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인생의 길에서도 우리의 신앙의 길에서도 모두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 한쪽으로만 치우치다 보면 우리는 문제가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과하게 먹으면 체하는 법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도 한쪽으로 치우치면 잘못하면 독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것을 잘 적절하게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너무나 육신의 정욕을 쫓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나 신앙에 빠져 집안 일도 신경 쓰지 않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적절하게 신앙생활과 세상의 생활을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으면 하나님과의 관계성이 끊어지고 그것을 결국 영적인 호흡 곤란으로 다가와 계속 기도하지 않으면 신앙의 생활이 재미가 없어지고 그 단계가 지나면 주일을 빠지게 되고 그러면 결국 주님을 떠나고 마는 엄청난 일들이 초래하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기도 안 하는 것이 우숩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니까? 영적인 영양 실조가 되어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을 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 함을 받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 함은 나의 신앙을 더욱 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두 번째 이적은 욥바에서 다비다라 하는 여인을 살려내는 이적을 행합니다. 다비다는 선한 행실과 구제하는 일에 모든 것을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많은 선한 일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으로 덕을 쌓고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하여 베드로를 불러온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도 많은 사람들에게 덕망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는 결코 그것을 묵과하시지 않습니다. 심은 데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덕을 행하면 덕으로 돌아오고 악을 행하면 우리에게 오는 것이 악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주님을 잘 믿고 그 분의 뜻대로 살면 생명의 부활로 나올 것이요, 그렇지 않고 악을 행하면 심판의 부활로 나올 것입니다.

 

이렇게 다비다는 죽었으면서도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의 간절한 부탁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본문 말씀에

 

베드로가 사람을 다 내어 보내고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돌이켜 시체를 향하여 가로되 다비다야 일어나라 하니 그가 눈을 떠 베드로를 보고 일어나 앉는지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성령의 이적을 간절히 간구 한 것입니다. 오직 주님의 능력을 간절히 사모하고 기도했던 것입니다. 그랬더니 죽었던 다비다가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이것은 오직 주님의 능력으로 일어난 이적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이적과 그의 수제다 베드로로 주님의 능력에 힘입어 다비다를 살린 것입니다. 여기에는 성령의 큰 역사 함이 있었던 것을 우리는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이 기적을 보고 다시 회개하고 주님의 곁으로 왔다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보아 성령의 역사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될 때에 큰 역사 함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해 사용될 때에는 성령의 역사 함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쓰일 때에는 30, 60, 100배의 결실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아는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는 오직 죽은 생명을 회개하고 주님께 돌아오는 데 사용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성령의 은사도 오직 주님의 증거를 위해 사용되어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성령께서 주시는 평안을 맛보고 모든 은사의 결실을 맺을 것입니다. 우리는 생명의 씨앗을 뿌리는 것입니다.

 

129 : 5-6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은사를 사모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일을 위해 사용될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될 것이요, 주님이 기뻐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정녕코 씨를 거두어들이는 자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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