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신약 강해

[성경 지명 원어 설교문] 가다라 Gadara

두란노 서원 2020. 3. 27.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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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두란노 서원에 오신 여러분들을 환영합니다. 오늘은 성경의 지명 원어 설교문 중에서 가다라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이 성경 땅의 이름을 통해서 설교에 적용하면 좋은 설교를 만들 수 있습니다.

 

지명연구 : 가다라 Gadara

1. 위치

1) 갈릴리 바다 남단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 지점에 위치한다.

2) 이 성읍과 주변 마을의 거민들은 주로 비(非)유대계 사람들이었다.

3) 데가볼리 성읍 중에 하나로 얄묵 강가의 아미타 온천 지대로부터 4.5Km 떨어진 언덕 꼭대기에 자리했다.

4) 3.5Km나 되는 고대 성벽의 흔적이 남아있으며, 극장, 사원, 공회당 등의 건물 자취를 통해 거대한 도시였음을 추측할 수 있다.

5) 그들이 사용했던 동전에 배 그림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그 행정권이 갈릴리 바다 동쪽 지방까지 미쳤던 것으로 보인다.

6) '가다라인의 땅', '거라사인의 땅' 기록으로 보아 제2의 가다라가 있었던 것이 확실시된다.

 

2. 역사

1) 주전 218: 마카베오 전쟁시 알렉산더 얀나이우스가 10개월 간 포위 끝에 점령하였다.

2) 주전 63: 로마 정복 후, 폼페이우스에 의해 재건되어 자유 도시가 되었다. 그후, 가비니우스는 팔레스타인의 다섯 점령 지역 중 하나로 만들어 지방 의회를 설치하였다.

3) 주전 30: 헤롯 대왕의 폭정이 심했다.

4) 주전 4: 헤롯이 죽은 후, 시리아 지방에 편입되었다.

5) 주후 70: 유대인의 반란 기간 동안 베스파시아누스에 의해 함락되었다.

6) 주후 240: 기독교 교회가 생겼다.

7) 주후 325: 회교도들이 점령하기 전까지 감독이 있었다.

 

3. 복음서에 나타난 가다라

1) 신약에서 가다라는 군대 귀신 들린 자가 치유되고 군대 귀신이 돼지에게 들어가자 돼지들이 갈릴리 바다에 뛰어들어 몰사한 사실이 언급되었다(막5:1눅8:26 같은 사건에 대한 기록).

2) 마태복음은 '가다라'로, 누가복음은 '거라사'로 각각 철자를 다르게 사용하였다.

3) 지리나 역사적 자료를 보면 '거라사의 가다라'로 나와 있어 중복된 명칭으로 추정된다.

4) 이 자료들에 의하면 가다라는 제한된 지역의 주성이고, 거라사는 가다라까지 포함한 넓은 지역을 가리킨다.

5) 현재까지 남아있는 케르사와 게르가가 거라사의 원형일 가능성이 있다.

 

4. 고고학적 발굴 및 유적

1) 가다라는 오늘날 요르단의 무케이스 또는 움 케이스와 동일한 장소로서 얄묵 강의 남부 골짜기가 보인다.

2) 두 개의 원형 경기장, 바실리카 회당, 사원, 줄지어 서 있는 건물 기둥들, 큰 주택들, 수도 등 페허의 잔해들이 발견되었다.

3) 길 양쪽으로 가로수를 심은 포장도로가 동쪽에서 서쪽으로 뚫려 있으며 이 위로 전차가 굴러간 바퀴 자국을 지금도 볼 수 있다.

 

원어설교 : 가다라 Gadara

가다라 Γερασηνος : 게라세노스 Gadara

마8:28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 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가다라는 요단강 동편 지역의 한 성읍으로 갈릴리 바다 남단에서 남동쪽으로 약 10Km지점에 위치해 있는 데가볼리의 성읍 중 하나입니다. 가다라가 지니고 있는 원어의 뜻은 '늙다, 닳아 헤어지다, 지치게 하다'로 성경은 이곳에서 한 광인이 치유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1. 가다라의 광인은 지친 영혼입니다

가다라는 광인에게서 귀신들이 떠나가면서 돼지 떼에 들어가 돼지들이 몰사했던 사건이 일어났던 곳입니다(막5:1-21). 이곳은 호반의 일부로 석회암 동굴이 많이 었었으며, 많은 동굴들이 묘지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에 한 광인이 헤메고 있었는데 그는 고랑과 쇠사슬에 매였어도 이를 끊어 버릴 정도의 괴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귀신에 눌려 밤낮 무덤 사이에서 소리 지르며 돌로 자기의 몸을 상하게 하였습니다. 이 광인은 귀신에 눌려 지친 영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품을 떠날 때, 사단은 삼킬 자를 찾는 굶주린 사자와 같이 우리에게 달려들어 종으로 삼으려 합니다. 누구든 사단에게 사로잡히면 이 광인과 같은 신세가 되고 맙니다.

 

2. 귀신들린 자는 인간 실상을 보여줍니다

마귀는 아담과 하와를 꾀었고 이후 계속해서 사람들을 괴롭혀 왔습니다. 마귀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죄를 짓도록 하기 위하여 간교한 꾀를 내어 시험에 빠지게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이 하와가 뱀으로 말미암아 미혹을 당한 것처럼 꼬임을 받을 것을 염려하였고(고후11:3),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던 시몬 베드로를 위하여 예수님은 믿음이 떨어지지 않도록 기도하셨습니다(눅22:31,32). 사단은 때때로 육신을 건드리면서까지 사람들을 괴롭히기도 합니다. 욥은 사단으로 말미암아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났고(욥2:7), 바울은 육체의 가시로 인하여 고생하였습니다(고후12:7). 사단은 '처음부터 범죄한 자'(요3:8)로 지금까지 계속해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가다라의 귀신들린 자는 이러한 사단에게 잡힌 자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3.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사단은 성경에 '우는 사자'(벧전5:8)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도들은 "이런 것쯤이야"라고 말하면서 자신의 범죄나 처한 상황을 가볍게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둑에 뚫린 조그마한 구멍이 둑을 무너뜨리고 그로 인하여 마을이 물에 잠길 수 있는 것처럼 우리들의 작은 실수와 범죄가 자신을 잠기게 하고 하나님의 사역에 지장을 초래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혜롭고 분별력이 있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광명의 천사로 위장하여 접근하는 사단의 본질을 정확하게 파악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 갑주를 입고(엡4:26-27), 마귀를 대적해야 합니다(약4:7).

흑암의 권세에서 건짐을 받은 성도들은 마귀를 쫓아낼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담대하게 사단과 대항하여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를 해야 하겠습니다.

 

설교1 : 가다라 Gadara

가다라 귀신들린 자들의 비극

마8:28,29 또 예수께서 건너편 가다라 지방에 가시매 귀신들린 자 둘이 무덤 사이에서 나와

 

가다라는 갈릴리 호수 건너에 있는 석회석 고지대의 아주 큰 마을이었습니다. 학자들 중에는 가다라와 거라사를 동일한 지역으로 보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주로 목축업을 했으며, 큰 마을답게 큰 공동묘지도 있었다고 합니다. 본문은 그와 같은 가다라 공동묘지에서 주님이 귀신 들린 자들을 만나신 내용입니다. 우리는 그 귀신들린 자들의 비극을 통해 하나님을 등지고 사단에게 종노릇 하는 불신 세계 사람들의 영적 상태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1. 사망의 땅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1) 묘지는 산 자들과 분리된 세계임

가다라 지방의 지질은 석회석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그래서 고지대에 굴을 파기가 쉬워 그곳을 묘지로 활용했다고 합니다. 귀신 들린 자들은 그 공동묘지를 거처로 삼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의 숨결과 아우성과는 멀리 떨어진 적막한 묘지가 그들의 집이었습니다. 생명의 따뜻한 온기를 찾을 수 없는 곳, 산 자들의 세계와 분리된 세계, 그곳이 곧 묘지의 큰 의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 세상 사람들의 영적 실상이 바로 가다라 공동묘지와 같았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과 단절된 채 사단의 사망 권세 아래 있었던 것입니다. 주 예수 부활의 권세, 그 생명의 권세가 왕 노릇 하기 전 이 세상의 가장 큰 권세는 바로 죽음이었습니다(롬5:12). 그 권세 아래에서 모든 사람들이 허물과 죄로 영적 사망의 상태에 있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엡2:1). 사단의 죄악 권세에 떠밀려 모두 묘지로 가는 외길을 갈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묘지는 희망이 사라진 세계임

비어스라는 시인은 악마의 사전이라는 글 속에서 묘지를 "숨쉬는 작업도 끝마치고 이 세상 모든 일도 끝내고, 그 미친 듯했던 경주, 끝까지 달려와 보니 얻어진 명예는 한낱 구덩이로 알게 된 곳!"으로 묘사했습니다. 가다라 귀신들린 자들은 인간으로서의 아무런 가치와 희망을 지니지 못하고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다른 복음서에는 그들이 밤낮 묘지 사이에서 "소리 지르며 돌로 제 몸을 상하고 있었더라"(막5:5)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가치의 창조, 이웃에 대한 사랑, 자신의 삶에 대한 기쁨과 희망이라는 개념들은 도무지 찾아볼 수 없는 절망의 세계 속에서 그들은 지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된 채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의 영혼과 그 삶은 생명도 희망도 없이 외로움과 공포와 허무의 연속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2. 엄청난 귀신들과 함께 지내고 있었습니다

1) 군대 귀신들과 함께 있었음

훌러 신학교의 유명한 선교 신학자인 피터 와그너 박사는 선교신학 참고서인 영적 전쟁이라는 책에서 매우 놀라운 말을 했습니다. 즉 세계의 모든 지역마다 사단의 군대인 귀신 무리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귀신들은 자신들이 거하고 있는 지역 세계 사람들의 영혼을 음란, 탐욕, 부정직, 마약, 살인, 폭력 같은 불의와 죄악으로 지배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어느 지역에서 선교에 승리하려면 그 지역 귀신들을 영적으로 먼저 제압, 추방해야만 교회가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이론입니다. 가다라 지방 귀신들도 엄청난 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막5:15에 보면 귀신 들렸던 자를 "군대 지폈던 자"라고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귀신들 스스로 주님께 그 정체를 '군대'라고 밝혔는데(막5:9), 그리이스 말로 '레기온'이라고 표현했습니다. 레기온은 육천 명으로 구성된 로마군의 연대를 뜻합니다. 실제로 그 귀신들은 이천 마리나 되는 돼지떼에 들어갈 정도였다고 합니다(막5:13). 우리가 아무리 좋은 조건과 환경을 지닌 지역에서 지낸다고 해도 우리 영혼을 신앙으로 무장하지 않으면 이 같은 사단 세력의 시험과 유혹을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2) 인간의 무한한 가능성을 포기한 사람들임

그 엄청난 군대 귀신들이 사람의 영혼 속에 거한다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교훈을 말해 줍니다. 우리 인간의 영혼과 마음은 연대급 귀신들을 수용할 수 있을 만큼 넓고 크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전능하신 형상을 본떠 우리 영혼을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영혼 속에 하나님의 성령과 그 무한하신 진리의 말씀을 수용할 수 있도록 하셨으며, 그로 인해 우리 인간들은 하나님께 대한 무한한 영생의 소망과 이웃에 대한 풍성한 사랑을 지닌 유일한 피조물이 될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가능성을 포기하고 성령 대신 군대 귀신을 그 마음에 허용한 가다라 귀신들린 자들의 삶은 얼마나 어리석고 비극적입니까? 이와 같은 어리석음과 비극은 오늘도 우리 주변에서 많이 발견됩니다. 하나님과 그 복음 진리를 받아들이는 것을 거부하고 그 마음속에 세상의 더러운 우상과 죄악을 허용하는 이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또 그 마음의 더러운 죄악들을 회개치 않고 더욱 사단의 유혹을 따르는 자들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무한한 축복의 가능성을 스스로 저버리는 자들인 것입니다.

 

3. 찾아오신 주님을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그와 같은 죽음과 절망과 죄악이 왕 노릇 하는 가다라 공동묘지에 우리 주님께서 찾아가셨습니다. 사람들이 꺼려하는 곳에서 소외당한 사람들을 구해 주시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가신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주님께서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게도 복음을 전파하시려고 찾아갔다고 증언합니다(벧전3:19,20). 주님이 가다라 공동묘지 같은 곳도 외면치 않으심에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그 귀신들린 자들은 주님을 꺼려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주님을 구세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을 '괴롭게'하는 자로 본 것입니다.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요3:19)이라는 주님 말씀대로 입니다.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이 세상 사람들의 가장 큰 비극은 자신들의 비참한 운명을 구해 주시고자 하는 그리스도 예수의 손길을 거부하는 속성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가다라 귀신 들린 자들의 비참한 상태는 사단의 사망과 죄악 권세 아래 종노릇 하는 세상 사람들의 한 모형입니다. 그러나 그곳에 우리 주 예수께서 오셨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주 예수는 이 세상의 희망의 근원이신 것입니다.

 

설교2 : 가다라 Gadara

가다라 주민들의 비극

마8:30-34 …간구하여 가로되 만일 우리를 쫓아 내실찐대 돼지 떼에 들여 보내소서 한대

 

'가다라'라는 마을 이름의 뜻은 '성벽으로 두른 마을'입니다. 갈릴리 호수 동남쪽으로 10Km쯤에 있는 이 성읍은 아주 높은 석회 고지대에 자리 잡은 큰 성읍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 주민들은 '가다라'라는 그곳 이름과 같이 주님께 대해 불신과 그 마음에 이기심의 성벽을 두르고 대한 것입니다. 주님이 귀신 들린 자를 구하시는 도중에 내쫓긴 귀신들로 인해 기르던 돼지 떼가 몰사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그 일로 인해 '가다라' 주민들은 생명의 주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1. 귀신들의 속성이 밝혀졌습니다

1) 더럽고 사악한 속성을 지님

귀신들은 주님께서 멀리 방목하고 있던 돼지 떼에게 들어가게 해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자 주님께서는 귀신들에게 귀신 들린 사람에게서 나가라고 명하셨습니다(막5:8). 귀신들은 자신들의 도피처로 돼지들을 선택한 것입니다. 돼지는 성경에 매우 부정한 동물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율법에 먹을 수 없는 부정한 동물 중 한 가지로 규정이 되어 있고(레11:7신14:8), 더러운 것을 좋아하는 짐승으로 '타락자'들을 상징하기도 했습니다(벧후2:22). 귀신들은 그 더러운 짐승들을 자신의 처소로 삼기를 원했으며 이는 귀신들의 속성이 얼마나 더러운지를 스스로 나타낸 것입니다. 게다가 한걸음 더 나아가 그 귀신들이 돼지 떼에 들어가자마자 돼지 떼가 못 견디고 바다에 투신하여 몰사하는 결과까지 생겼습니다. 귀신들의 속성이 심히 사악하다는 증표입니다. 사단의 속성은 오로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요10:10)으로 이루어져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다른 우상을 따르는 사람들의 영혼과 삶은 추하게 되고 끝내는 파멸에 이르게 된다는 진리를 교훈하고 있습니다.

 

2) 주님의 주권 아래 있음

이와 같은 귀신들도 우리 주 하나님의 권세와 명령 아래 있다는 사실에 성도들은 안심하시기 바랍니다. 귀신들은 자신들의 마음과 의지대로 움직이는 자유로운 존재가 아닙니다. 주님께 허락을 구하고 주님께서 "가라"(32)고 명하셨기에 돼지 떼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오라"는 주님의 명령에 귀신 들린 자에게서 나와야 했고 "가라"는 명대로 순종할 수밖에 없는 한계적인 피조물인 것입니다. '가다라'의 군대 귀신들도 결국은 주 하나님의 절대 권세 아래 굴복해야 하는 제한된 권한만을 지니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 성도들이 성령과 말씀 안에서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대적하면 귀신들이 굴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때로는 귀신이 들어와 아골 골짜기 같은 환경에 거할지라도 담대해야 합니다. 주 하나님의 자녀로서 낙심치 말고 복음 진리를 전파하여 귀신들의 더럽고 사악한 세력을 물리쳐야 하겠습니다.

 

2. 귀신들린 자와 유사한 '가다라' 주민들의 속성을 볼 수 있습니다

1) 의와 진리를 싫어함

가다라 주민들은 자기들이 기르던 돼지 떼가 몰사했다는 소식을 듣고 주님께 허겁지겁 나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속성은 마치 귀신 들렸던 자들과 비슷하였습니다. 그들은 귀신들이 쫓겨나가고 그 귀신들에게 시달리고 있었던 이웃에게 베풀어진 놀라운 은혜와 생명의 권세에는 관심도 없었습니다. 그와 같은 은혜와 생명의 주님을 반갑게 환영하기는커녕 귀찮은 존재로 여긴 것입니다. 마치 귀신 들린 자들이 전에 주님을 뵙고 "우리를 괴롭게 하려고 여기 오셨나이까"(29)라고 불평한 모습과 닮은 것입니다. 오직 외적인 결과와 물질적인 이해 득실의 관점으로 주님을 평가한 까닭입니다. "돼지 떼가 저 예수 때문에 죽었으며 그로 인해 우리의 경제에 큰 손실을 입게 되었다"는 생각만이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가다라' 주민과 같이 물질만을 중시하고 영원한 의와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싫어하는 사상이 세상에서 발견됩니다. 공산주의 창시자 칼 막스는 종교, 특히 기독교를 가리켜'민중의 아편'이라고 매도했습니다. 기독교에 대한 신앙은 공산주의 혁명의 걸림돌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물질 생산과 번영만이 행복의 요소인데, 기독교는 영생을 주장하고 개인의 영혼과 그 삶의 권리를 강조하기에 걸림돌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가다라' 주민들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는 물질 제일주의와 그 사상이 상통합니다.

 

2) 주님께 어리석은 요구를 함

가다라 주민들은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34)했습니다. 생사화복의 근원이시요, 영생의 은혜를 베푸실 그리스도께 자신들을 떠나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악한 요구입니까? 오늘도 물질 욕심에 눈이 가리어져 주님께 어리석은 간구를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없는지, 또 나 자신은 그와 같은 어리석은 짓을 하지 않았는지 살펴봐야 합니다. 탐심으로 드리는 기도는 결국에는 주님에게 응답받을 수 없는 기도임을 아시기 바랍니다. 내 욕망과 욕심만을 위해 드리는 기도는 가다라 주민의 간구처럼 "주여 나를 떠나소서"라는 의미로 주님께 들려질 것입니다.

 

3. 그 결과 가다라 앞날에는 영원한 재앙만이 기다리고 있게 되었습니다

1) 사단의 점령지로 만든 가다라

주님은 귀신을 내어 쫓았어도 그냥 빈집으로 있는 곳에는 귀신들이 다시 돌아와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고 교훈하셨습니다(마12:43-45). 그리스도를 왕으로 섬기지 않는 영혼이나 지역은 '빈집'과 다름 없습니다. 주인없는 빈집에 도둑과 불한당이 설치듯 주님을 떠나보낸 가다라 지역과 그 지역주민들의 심령 속에는 전보다 더욱 사단과 귀신들의 권세가 왕 노릇 하게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가다라 공동묘지에 거했던 귀신 들린 자들과 같은 처지가 될 사람들이 무수하게 발생할 가능성을 주민들 스스로 만든 것입니다.

 

2) 무너져 폐허가 된 성읍 가다라

고대부터 대도시였던 가다라 성읍은 지금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주님을 떠나 보낸 지 약 31년 후 대 지진이 일어나 파멸됐기 때문입니다. 현재에는 '움케이스'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유황 성분을 지닌 노천 온천이 솟아 유명한 온천 지역으로 변해버린 것입니다. 튼튼한 성으로 둘러싸였던 가다라도 주 하나님을 등지고는 온전할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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