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을 돌보시는 하나님을 찬송함(시 65:1-13)
[1절]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 . . .
다윗은 말한다. “하나님이여,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리오며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 다윗은 찬송이 시온에서 주를 기다린다고 표현한다. ‘기다린다’는 원어(두미야)는 ‘잠잠히 기다린다’는 뜻이다(BDB). 찬송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의 하신 일을 인정하고 높이는 행위이다. 그것은 예배의 중요한 요소이다. 그것은 정신 없이 부르는 것이 아니고 마음 속으로 조용히 생각하며 깨달음을 가지고 마음에서 우러나서 부르는 것이어야 한다. 성도들의 잠잠한 묵상은 은은한 혹은 힘찬 찬송으로 나타난다.
시온은 성소, 즉 성막이 있는 곳이다. 성소에는 언약궤가 있고 그 위에 속죄의 피가 뿌려진다. 그 피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를 상징한다. 그 속죄의 피로 죄씻음을 받고 구원받은 사람마다 하나님을 찬송할 것이다. 성소는 또한 성도들이 모이는 곳이다. 성도들은 거기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며 찬송한다. 찬송은 창조의 목적이며(사 43:21) 구원의 목적이다(엡 1장). 구원받은 성도들은 예수 그리스도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을 찬송해야 한다(히 13:15).
다윗은 또 사람이 서원을 주께 이행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서원은 하나님께 무엇을 간구할 때 하나님께 엄숙히 약속하며 간구하는 것이다. 기도의 응답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자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송하고 그 서원을 이행할 것이다. 한나는 자신이 서원한 바를 하나님께 그대로 이행했다(삼상 1:27-28). 서원은 반드시 갚아야 한다(전 5:4). 서원의 이행에는 하나님을 찬송함도 포함될 것이다.
[2절]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다윗은 또,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라고 말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올리는 말씀이다. 그것은 하나님께 찬송하고 감사하며 자신의 죄를 고백하고 소원을 아뢰는 내용이다.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고 인격적이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생각하시고 응답하신다. 그는 우리의 찬송과 감사를 기쁘게 들으시고 우리의 죄 고백을 듣고 용서하시고 우리의 소원을 듣고 응답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자기의 형상대로 만드셨고 그와 교제하기를 원하시며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신다.
예수께서는,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고 교훈하셨고(마 7:7-8),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라”고 말씀하셨다(요 14:13).
다윗은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고 말한다. 사람은 흙으로 지음받은 존재이다. 죄로 인해 연약해져서 피곤하거나 병들기 잘 하는 몸들, 정신적으로도 불안함과 두려움, 우울함과 슬픔을 잘 가지는 몸들, 풀과 같고 풀의 꽃과 같이 시들고 쇠약해지는 몸들이며, 할 수 없는 것들이 많은 몸들, 또 원하는 선을 행할 능력이 부족하여 죄를 이기지 못하는 몸이며(롬 7:14-15, 18), 마귀의 시험에 떨어지며(마 26:41) 죽음에 굴복하는 몸들이다. 그러나 이런 연약한 몸들이기 때문에 모든 육체가 하나님께 나아온다. 그들은 하나님께 나아와 그를 의지하고 그에게 소원을 아뢰어 힘과 평안과 구원과 도우심의 응답을 받는 것이다(사 40:28-31; 빌 4:6-7).
[3절]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죄악은 성도의 찬송에 걸림돌이며 기도에 걸림돌이다. 아니, 우리 삶 전체에 걸림돌이다. 이사야 59:1-2,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사람은 죄 때문에 불행하게 되었다. 죄의 결국은 죽음과 영원한 지옥의 멸망이다.
다윗은 “죄악이 나를 이기었다”고 말한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다. 죄악은 인류 전체를 삼켰다. 인간의 본성은 죄로 인해 심히 부패되고 더러워지고 연약해졌다. 로마서 7:18, “내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로마서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다윗은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라고 말한다. 죄를 이길 힘은 사람에게는 없다. 죄를 이길 힘은 하나님께서 긍휼로 우리의 죄과를 사해주실 때, 즉 죄에서 해방될 때 얻는다. 찬송과 기도에 걸림돌이 되고 삶 전체에 걸림돌이 되는 죄 문제의 해결은 하나님의 사유하심밖에 없으며 그때 사람은 새 삶을 살 수 있다. 미가 7:18-19, “주와 같은 신이 어디있으리이까? 주께서는 죄악을 사유하시며 그 기업의 남은 자의 허물을 넘기시며 인애를 기뻐하심으로 노를 항상 품지 아니하시나이다. 다시 우리를 긍휼히 여기셔서 우리의 죄악을 발로 밟으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사죄가 곧 구원이며 영생의 길이다. 거기에 하나님께 나아가는 담대함이 있고 성도의 찬송의 이유가 있다.
[4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본문은 성도에 대해 증거한다. 첫째, 성도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이다. 우리가 그를 택한 것이 아니고 그가 창세 전에 우리를 택하셨다(엡 1:4). 구원은 하나님께로부터 시작된 것이다. 그는 주권적으로 우리를 구원하셨다. 둘째, 성도는 하나님께서 가까이 오게 하신 자이다. 구약의 성막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지를 증거한다. 죄인은 중보자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죄사함을 통해서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다(히 10:19-22). 셋째, 성도는 하나님의 뜰 안에 거하게 된 자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뜰 안에 거하며 그에게 예배드리고 찬송하고 기도하는 자이다.
본문은 이런 성도가 복되다고 말한다. 인생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을 모신 것, 즉 하나님과 교제하며 연합하며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거기에 영생이 있고 영육의 모든 좋은 것이 다 있다. 하나님 안에 모든 복이 있다. 하나님을 떠나는 것, 그와 교제가 끊어지는 것, 그것이 가장 불행한 일이다. 그것이 곧 죽음과 영원한 멸망이다.
본문은 또한 성도의 만족에 대해 증거한다. 본문은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라고 말한다.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집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원어(투브)는 ‘복’이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성전의 복은 하나님 자신이며 죄사함의 은혜이며 영생의 약속이다. 성도의 가장 큰 복은 하나님 자신이다. 사람의 육신적, 물질적 만족은 밑빠진 독처럼 끝이 없지만, 하나님 안에는 인생의 참 만족이 있다. 시편 23:1-2,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하나님 안에 성도의 참 만족이 있다.
[5절]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여, 땅의 모든 끝과 먼 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주께서 의를 좇아 엄위하신 일로 우리에게 응답하시리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구원의 하나님이시다. 그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며 죄의 결과들인 병, 기근, 재난, 전쟁, 죽음, 특히 영원한 지옥 형벌로부터 구원하신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을 ‘우리 구주 하나님’이라고 불렀다(딤전 1:1; 딛 1:3).
하나님께서는 또 땅의 모든 끝과 먼바다에 있는 자의 의지할 자이시다. 인간은 종족, 언어, 피부색, 문화, 문명 정도를 불문하고 본질적으로 똑같다. 하얀 피부의 서양 사람이나 우리나라 사람같이 누런 피부의 사람이나 인간 본성은 똑같다. 외딴 섬에 사는 사람이나 밀림 속 오지에 사는 사람이나 인간 본성은 똑같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모두가 의지할 수 있고 그들을 구원하실 수 있고 도우실 수 있는 자이시다. 그는 온 인류, 모든 사람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의를 좇아 응답하신다. 그는 의로우신 일만 행하신다. 의(義)는 도덕 규범에 맞는 것, 인간의 양심에 맞는 것, 올바르고 정당한 것을 가리킨다. 그에게는 불의가 조금도 없으시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모든 일은 의로운 일뿐이다.
또 하나님께서는 엄위하신 일로 응답하신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는 기이한 능력이 있으시다. 그는 인간 보기에 불가능한 것도 가능케 하신다. 그는 사람들 보기에 절망적인 것을 변화시켜 소망과 기쁨이 있는 일이 되게 하신다. 그는 사람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다.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악인들을 공의로 징벌하시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의와 선만을 행하며 살고자 하는 자들을 모든 환난에서 기이한 방법으로 건져내신다.
[6-7절]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 . . .
다윗은 또 말한다. “주는 주의 힘으로 산을 세우시며 권능으로 띠를 띠시며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하나님께서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라는 원어(엘로힘)는 ‘능력이 있다’는 말에서 나왔다고 한다. 그는 권능으로 띠를 띠셨다. 그의 능력은 ‘전능’이다. 욥은 여호와께 “주께서는 무소불능(無所不能)[모든 일을 할 수]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라고 대답하였다(욥 42:1-2).
하나님께서는 능력으로 산을 세우셨다. 저 크고 험하고 높은 산은 사람이 흙을 삽으로 파서 만들 수 없고 굴착기를 동원해도 어림도 없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천지만물은 하나님의 크신 능력, 곧 전능을 잘 증거한다. 로마서 1:20,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사람들이]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께서는 시끄러운 것들도 조용케 하신다. 그는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신다.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은 사람들에게, 심지어 어릴 때부터 바다에서 자란 어부들에게도 큰 두려움이다. 하나님을 피하여 가던 요나가 탄 배는 폭풍으로 인해 거의 깨어지게 되었었다(욘 1:4). 바울을 로마로 호송하던 배에 탔던 276명의 사람들은 유라굴로라는 광풍으로 인해 두 주간이나 거의 죽을 뻔하였었다(행 27:14-44). 또 인류 역사상 혁명이나 구테타, 데모나 민중 폭동은 정권을 무너뜨리기도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들을 조용하게 하실 수 있다. 자연만물도, 인간 사회도 그의 손에 의해 진정된다.
[8절] 땅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 . .
다윗은 또 말한다. “땅끝에 거하는 자가 주의 징조를 두려워하나이다. 주께서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시며.” ‘땅끝에 거하는 자’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가리킨다. ‘주의 징조들’은 자연의 특별한 현상들, 예를 들어 천둥과 번개, 지진, 홍수, 태풍 등을 가리킬 것이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의 행하시는 자연의 특별한 현상들을 보고 느낌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 징조들을 두려워한다.
또 하나님께서는 아침 되는 것과 저녁 되는 것을 즐거워하게 하신다. 그는 우주와 지구의 운행을 주관하신다. 그는 낮과 밤을 오게 하시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순환케 하신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아침과 저녁을 감사하며 기쁨과 즐거움으로 맞는다. 어둠이 가고 날이 밝아온다. 아름다운 자연만물이 드러나고 일하고 활동할 수 있는 시간이 온다. 저녁은 사람에게 쉬는 시간이다. 노동자들에게 저녁은 고된 일들을 끝내고 개인적인 일을 볼 수 있는 자유시간이다. 개인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계획할 수 있는 시간이며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며 피곤한 몸을 쉴 수 있는 시간이다. 아침과 저녁은 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다. 사람들은 아침과 저녁을 기뻐한다.
[9-13절]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 . . .
다윗은 또 말한다.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하나님의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시고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 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 주시나이다.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들의 초장에도 떨어지니 작은 산들이 기쁨으로 띠를 띠었나이다.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저희가 다 즐거이 외치고 또 노래하나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사는 땅에 물을 주셔서 심히 윤택하게 하신다. 땅은 물을 필요로 한다. 물이 있어야 풀과 나무가 자랄 수 있다. 또 하나님께서는 강에 물이 가득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강’이라는 표현은 하나님께서 시기 적절하게 내려주시는 비를 가리킨 것 같다(Calvin, Poole). 이렇게 땅이 수분이 넉넉할 때 곡식이 잘 자라고 풍성한 수확을 얻는다(행 14:17).
한 해 전체가 하나님의 은택으로 가득하다. 하나님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시고 단비로 그 이랑을 부드럽게 하시고 곡식의 싹이 나오게 복 주신다. 땅이 기름지므로 곡식도 잘 자라고 풍성한 열매를 내고 양떼는 좋은 꼴을 뜯어먹고 잘 자라며 새끼들도 많이 낳는다. 이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신다. 하나님의 은택과 땅의 기름짐과 풍성한 수확과 양떼들의 풍성한 출산으로 인해 사람들은 추수와 수확의 기쁨과 즐거움이 넘친다. 이것은 다 하나님이 주신 복이다.
본 시편의 교훈은 무엇인가? 첫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영적 은혜를 감사하며 찬송하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선택하셨다. 4절, “주께서 택하시고 가까이 오게 하사 주의 뜰에 거하게 하신 사람은 복이 있나이다. 우리가 주의 집 곧 주의 성전의 아름다움으로 만족하리이다.” 또 그는 우리의 기도를 응답하셨다. 2절, “기도를 들으시는 주여, 모든 육체가 주께 나아오리이다.” 그는 특히 우리의 죄를 사하셨다. 3절, “죄악이 나를 이기었사오니 우리의 죄과를 주께서 사하시리이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의 육적 은혜도 감사하며 찬송하자. 우리는 환경적 평안을 감사하며 찬송하자. 7절, “바다의 흉용과 물결의 요동과 만민의 훤화까지 진정하시나이다.” 그는 우리에게 환경적 평안, 사회적 평안을 주신다. 또 우리는 물질적 은택도 감사하며 찬송하자. 9-13절, “땅을 권고하사 물을 대어 심히 윤택케 하시며 . . . 이같이 땅을 예비하신 후에 저희에게 곡식을 주시나이다. . . . 주의 은택으로 연사에 관 씌우시니 주의 길에는 기름이 떨어지며 . . . 초장에는 양떼가 입혔고 골짜기에는 곡식이 덮였으매.” 그는 모든 물질적 은택도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하나님 중심으로만 바르게 살자. 우리는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하며 경건과 도덕성을 가지자. 즉 성경 읽고 기도하는 경건한 삶과 바르고 선하고 진실한 도덕적인 삶을 실천하자.
[미가 3장 주일설교말씀] 치리자들과 선지자들의 죄악(미 3: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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