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열왕기상 성경 주석 설교] 솔로몬의 일천번제 제사(왕상 3:4-15)

두란노 서원 2024. 8. 1. 0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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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왕기상 3장 성경 주석 설교 말씀은 솔로몬의 일천번제 제사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지혜를 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원하는 지혜를 구하니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부귀영화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는 것을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정욕적으로 구하는 것은 하나님이 응답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일천번제 제사(왕상 3:4-15)

 

=====3:4

기브온...산당이 큼이라 - '기브온'(Gubeon)은 예루살렘 북서쪽 약 10km지점에 위치한 해발 722m 가량의 이스라엘 중부의 주요 성읍이다(9:3;10:2;18:25;21:17;삼하 21:1). 가나안 정복 후 처음 이곳은 베냐민 지파에게 분배되었으나(18:25), 후에 레위 지파의 성읍으로 구별되었다(21:17). 이곳 기브온의 산당이 특별히 유명하게 된 것은 사울의 놉(Nob) 제사장 학살 사건(삼상 22:11-19)이후 놉에 있던 여호와의 장막이 기브온으로 옮겨지고 나서 부터였다(대상 16:39;대하 1:3). 즉 그 때 이후로 여호와의 장막(모세의 장막)이 있는 기브온과 여호와의 법궤(언약궤)가 있는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2대 제사 중심기가 되었던 것이다. 한편, 즉위 후 솔로몬은 '일천 번제'는 대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놋단'이 있는 기브온이 더 적절하다고 판단하고, 신하들과 백성의 대표들을 이끌고 기브온으로 올라갔던 것 같다(대하 1:2-6).

그 단에 - 기브온 산당의 모세 성막(27:1-2;38:1,2) 안에 있던 놋 제단을 가리킨다(대하 1:3-6).

일천 번제를 드렸더니 - 일천의 숫자가 횟수인지 양()인지 분명치는 않으나 어느 쪽이든 엄청난 규모임엔 틀림없다. 솔로몬은 백성들에 대한 통치를 시작하기 전 무엇보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정립하기 원했다. 따라서 솔로몬은 신하들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을 모두 이끌고 기브온 산당으로 올라가 자신과 백성들을 하나님께 전적 헌신하는 하나의 신상 고백으로서 '일친 번제'를 드린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과 이스라엘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기를 간구한 것이다. 한편, '번제(올라)는 희생제물을 통째로 제단 위에서 불사르는 제사로서, 하나님과 정상적인 관계 정립을 원할 때 하나님께 자신을 온전히 헌신하기를 원할 때 누구든지 자발적으로 드릴 수 있는 자원제이다(1:3).

그러므로 솔로몬도 이러한 목적으로 그의 통치 초기에 왕 개인과 이스라엘 공동체의 헌신을 위하여 이처럼 기브온 산당에서 이 '올라'를 드렸던 것이다(Tosef). 그런데 여기서 특기할만한 사실은 무엇보다도 그 규모면에서 '일천 번제' (엘레프 올로트)라는 전무후무성인데, 이는 이스라엘 백성 전체의 전적헌신의 징표일 뿐 아니라, 즉위 초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과 순종에의 열의가 반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혹자는 이 제사 제물들을 힘껏 드린다 할지라도 최소한 칠일 또는 팔일이 소요된다고 보았다(J. Hammond). 여하튼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은 신하가 군주에게 예물을 바치는 것처럼 충성과 헌신의 표시로 생각되었다(IDB;시68:18). 그러므로 일천 번제는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으로 믿고 모시는 솔로몬과 백성들의 신앙 고백 행위인 것이다.

=====3:5

꿈에 나타나시니라 - '나타나셨다'(니레아)는 말은 하나님께서 직접 자신의 뜻을 계시하셨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이 말은 솔로몬이 하나님의 형체를 구체적으로 보았다는 말은 아니다(B hr, Keil, Hammond). 한편 ''(할롬)은 특히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뜻을 밝혀 주는 특별한 계시 방편으로 자주 등장한다(15:12;28 :12;33:15,16;1:20-23;2:12).

내가 네게 무엇을 출꼬 너는 구하라 - 하나님의 나타나심은 솔로몬의 강렬한 헌신인 일천 번제에 이어 발생한 것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솔로몬의 희생 제물을 기쁘게 받으셨음을 의미한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통해 큰 일을 하시고자 했음을 의미한다(Patterson). 여기서 솔로몬의 일천 번제는 이제 시작될 통치에 대해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려는 목적이 있었다(Keil). 따라서 솔로몬에게는 여호와의 뜻에 부합될 정당한 간구를 할 만반의 채비가 갖추어져 있었다(6:33;7:7;4:3).

=====3:6

자신의 소원을 말하기 전에 솔로몬은 먼저 이미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고 있다. 이처럼 과거에 이미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기억하고, 먼저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은 모든 간구자가 반드시 갖추어야 할 기본자세이다.

성실과 공의(公義)와 정직한 마음 - 궁극적으로 이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의 속성이다(신 32:4).

주와 함께 주의 앞에서 행하므로 - 다윗이 하나님의 성품을 닮을 수 있었던 2대 비결이다. 즉 다윗은 하나님과 함께(cum Deo), 하나님 앞에서(coram Deo) 행하였기 때문에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고, 백성들을 통치할 수 있었다.

큰 은혜 - '큰 은혜'(헤세드 가돌)의 문자적 의미는 '크신 친절'(great kindness) 또는 '크신 긍휼'(great mercy)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미 베푸신 것들은 다만 행한 대로의 보답이 아닌 오직 은총일 따름이라고 솔로몬은 겸손히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은혜'(헤세드)는 보통 '언약'과 같이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8:23;7:9,12;9:32;9:4;7:20 ). 즉 언약 관계하에서 주어지는 친, 사랑, 긍휼, 호의 등이 바로 '헤세드'인 것이다. 이런 맥락하에서 특별히 여기서는 당신의 언약을 따라 다윗 가문을 선택하셔서 영구한 왕위를 주신 하나님의 크신 호의를 의미한다(1:48;2:4,45;대하 1:8,9).

=====3:7

종은 작은 아이라 - 주석가들은 이때의 솔로몬의 나이를 보통 20세 전후로 본다(B hr, Keil ). 그러나 여기서 솔로몬의 이 고백은 반드시 나이의 문제라기보다는 솔로몬의 자기 겸비를 나타내는 것이다(Patterson, Hammond). 즉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수많은 백성을 통치해야 하는 책임의 막중함에 비해 자신의 경험 미숙과 연약함을 절실히 느끼고 고백하는 말인 것이다. 그런데 성경에서 하나님의 소명에 임하는 인물들은 대개 이와 같이 자신의 부족함과 부적격함을 토로하고 있다(3:11;6:15;1:6,7 ). 그러나 이것은 도리어 그 임무가 하나님의 능력에 전적 의존되어 있음을 보여준.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하고 - '출입하다'(야차 와보)란 말을 직역하면 '나가고 들어오다'(go out and come in)란 뜻인데, 이는 곧 맡은 바 자신의 임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키 위하여 공적으로 활발히 활동하는 상태를 가리키는 성경의 관용적 표현이다. 따라서 '출입할 줄을 알지 못한다'는 솔로몬의 말은 왕으로서 어떻게 백성들을 성공적으로 잘 다스려야 할지 모르겠다는 말이다(27:17;28:6;31:2;삼상 18:13;121:8).

=====3:8

주의 빼신 백성 -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신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말로(7:6), 직역하면 "주께서 선택하신 주의백성"이란 의미이다.

저희는 큰 백성이라...기록할 수도 없사오니 - 이 말은 일찍이 조상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약속을 회상하며 한 말이다(13:16;15:5;22:17). 한편, 솔로몬 당시의 인구가 얼마였는지 확실치 않으나, 다윗이 그의 말년에 인구 조사를 실시했을 때 20이상의 성인 남자만 130만 명에 이르렀다는 기록이 있다(삼하 24:9).

수효가 많아서 셀 수도 없고 -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그 후손들로 '땅의 티끌'(13:16), '하늘의 뭇별'(15:5), '바닷가의 모래'(22 :17) 같이 많이 번성하도록 축복하겠다고 약속하신 바 있었다.

=====3:9

누가...재판을 할 수 있사오리까 - '재판하다'(솨파트)는 성경에서 주로 '다스리다'로 번역되었다(12:11;삼상 8:5,20). 왕정(王政) 시대 이전에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사사(士師)들의 임무는 재판관(쉐파트, '사사'로 번역됨)으로서 사회의 각종 분규를 매듭짓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왕정 시대에 들어와서도 재판은 통치의 주된 기능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실제로 고대 국가의 왕들은 통치자인 동시에 최고 재판관이었다. 이런 점에서 하나님께 지혜를 받은 후 솔로몬이 한 통치의 첫 업무는 재판이었(16절 이하). 그리고 그 재판이 곧 왕의 권위를 인정받게 하였다(28).

지혜로운 마음 - '지혜로운 마음'(레브쇼메아)은 문자대로는 '듣는 마음'이다. 그런데 '듣다'란 동사 '솨마''복종하다'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루(Luther)가 이를 '순종하는 마음'으로 번역한 것은 의미가 깊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란 하나님의 말씀을 삼가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데서 얻는다고 보기 때문이다(119:97-99;2:6-9). 여하튼 솔로몬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올바르게 통치하고 재판하기 위해 요구되는 총명과 분별력을 구했다.

선악을 분별하게 - 통치자로서 백성들의 제반 문제에 대해 '옳고 그름'을 잘 재판할 수 있게 해달라는 것이다. 만일 통치자가 백성들 사이의 제반 문제에 대해 시시비비를 옳게 가려 주지 못한다면, 그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릴 자격조차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솔로몬은 무엇보다 통치자로서 백성들을 잘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는 '지혜로운 마음'을 구했던 것이다. 한편 솔로몬이 구한 이러한 지혜는 결코 사색적이고 추상적인 지혜가 아니라, 실제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로서, 그 일례가 16-28절의 판결 속에 잘 드러나 있다.

=====3:10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이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택한 백성을 맡아 다스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치와 재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9절>.

=====3:11

주의 마음에 맞은지라 - 직역하면 '주의 눈에 좋았다'란 뜻이다. 즉 솔로몬은 하나님 보시기에 올바른 기도를 드린 것이다. 왜냐하면 주의 택한 백성을 맡아 다스릴 솔로몬은 이스라엘의 참된 주권자이신 하나님께 무엇보다도 올바른 통치와 재판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지혜를 요청했기 때문이다<9절>.

=====3:12

원문에는 본절의 초두에 '보라'( , 힌네)란 말이 있어 하나님의 응답이 생생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 준다(Keil).

너와 같은 자가 일어남이 없으리라 - 후일 역대기 기자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된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대상 29:25;대하 9:22).

=====3:13

구하지 아니한 부와 영광도 네게 주노니 - 이스라엘 역사에서 부와 영광의 원천이신 하나님을 잊은 채 그 자체를 목적으로 구하는 자들에게는 엄중한 경고가 내려졌다(8:17;삼하 12;10:3;5:27;7:11;12:8;6:12). 그러나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것이 우선되면(10)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여타 모든 것을 더해 주신다(6:32, 33;1:5).

=====3:14

네 아비 다윗의 행함 같이 - 다윗의 행적은 후대 역사가들에 의해 열왕(列王)들의 선악을 판별하는 기준이 되었다(9:4;15:11 ). 그런데 후일 솔로몬의 행적은 다윗의 기준에 못 미쳤던 것으로 판정되고 말았다(11:4,6).

법도와 명령 - 하나님의 모든 율법과 교훈을 강조하여 지칭하는 증언법적 표현이. 2:3;4:1 주석 참조.

지키면...네 날을 길게 하리라 - 간구한 대로 솔로몬이 총명한 지혜를 받을 수 있었고, 덧붙여 수()와 부()와 권세를 누릴 수 있었던 것은 솔로몬이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부친 다윗의 법도를 따라 행했기 때문이었다(3). 따라서 솔로몬이 이후 계속해서 그 같은 지복(至福)의 상태를 누리려면, 변함없이 즉위 초기와 같은 순수하고 경건한 신앙 상태를 유지해야만 했다. 그러나 불행히도 솔로몬은 말년에 이를수록 점점 여호와의 길로부터 벗어나 타락하고 말았다(11:9-13). 그 결과 솔로몬은 "네 날을 길게 하리라"는 여호와의 축복을 받아 누리지 못했다(Keil, Hammond). 왜냐하면 구약 시대의 관념상 이러한 하나님의 약속은 비단 영적인 의미뿐 아니라 보다 실제적인 의미를 지녔다는 점에서, 솔로몬이 60세 안팎의 나이로 죽고 말았다는 사실로 미루어 결코 그가 장수했다고 볼 수 없기 때문이다.

=====3:15

솔로몬이 깨어보니 꿈이더라 - 여기서 ''( , 할롬)은 일반적인 평범한 꿈이 아니라, 특별한 꿈으로서 곧 하나님이 주신 꿈이요 그 꿈을 통한 계시였다. 즉 구약 시대에 이러한 꿈은 외부의 변화 없이 인간 내면의 사고 작용과 감각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계시 방편이었다(20:6;삼상 28:6;2:4). 라서 이러한 꿈을 꾼 자는 꿈을 깬 이후에도 꿈의 내용을 생생히 기억할 수 있었으며 , 또한 자신의 꿈속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을 수 있었다(Patterson, Keil). 일찍이 야곱(28:10-22), 요셉(37:5-11), 바로(41:1-7)도 이같은 꿈을 꾸었었다.

이에 예루살렘에 이르러...잔치하였더라 - 기브온 산당의 제사를 모두 마친 후 솔로몬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법궤가 있는 시온 산 제단에서 새로 번제와 수은제를 드렸다. 그런데 기브온에서와는 달리 예루살렘에서는 특별히 수은제(쉘라)가 추가되고 있다. 여기서 '수은제(酬恩祭)는 곧 레 3:1-17;7:11-21,28-34에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는 '화목제'를 가리킨다. 따라서 이것은 감사를 표시하는 제사이. 즉 솔로몬은 기브온의 일천 제사를 통해 하나님의 응답과 약속을 얻고 예루살렘으로 돌아오자마자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한편 이 화목 제사에 쓰인 제물들은 신하들과의 잔치에 사용되었을 것이다(7:15,31;삼상 2:16).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 서서 - 다윗 통치 이후 솔로몬 성전이 완공될 때까지 이스라엘에는 두 개의 장막이 있었다. 하나는 기브온에 있는 원래의 장막이고(대하 1:3), 른 하나는 예루살렘의 시온 산 위에 있는 임시 장막이다(삼하 6:17). 그런데 기브온 장막은 원래 모세의 장막과 같은 온전한 형태를 갖추고는 있었지만, 여호와의 궤(법궤, 언약궤)가 없었다. 반면 시온 산 위의 장막 속에는 여호와의 궤가 안치되어 있었지, 온전한 장막의 형태를 갖추지 못했다. 즉 두 개의 장막이 불완전한 상태로 유지되어 왔던 것이다. 이에 따라 다윗시대에는 사독과 아비아달이 양쪽에서 이중으로 대제사장직을 수행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러면 다윗은 왜 언약궤와 장막을 한 곳으로 집중시키지 않았을까? 가장 큰 이유는 아마도 영구한 여호와의 성전 건축 계획이 있었으므, 무리하게 한 쪽을 철회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 같다(The Ecpositor's Bible Comme-ntry). 아무튼 이러한 연유로 인해 솔로몬은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제사를 필한 후, 예루살렘의 시온 산에 있는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응답에 대한 감사와 헌신의 표시로서 새롭게 번제와 수은제를 드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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