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병 환자 나아만 아람 군대 장군(왕하 5:1-7)
성 경: [왕하5:1] 비나아만 사르 치바 멜렉크 아람 하야 이쉬 가돌 리피네 아도나이브 우니시 파님 키 보 나탄 아도나이 티슈아 라아람 비하이쉬 하야 기보르 하일 미초라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문둥병자 나아만]
아람 - '셈족'의 후예로서 '수리아'라고도 불린다. 유목 민족이었던 그들은 B.C.13세기경에 힛타이트의 영토였던 다메섹에 정착했다. 북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해서는 상황에 따라 우호 관계, 혹은 적대 관계를 맺었다(16:5;왕상 15:18-20). 특별히 상업에 재능을 보여 각지를 돌아다니며 통상을 벌였기 때문에 그 언어가 동방 무역 세계의 언어가 되었다(18:26;사 36:11;스 4:7;단 2:4).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된 후 신약시대에는 아람어가 팔레스틴에서 통용되었다(마 27:46;막 5:41;7:34).
아람 왕의 군대 장군 나아만은 - 여기서 아람 왕이란 직접적으로 누구를 가리키는지 그 이름이 분명히 명시되어 있지 않으나 일반적으로 6:24과 8:7에 등장하는 벤하닷I세(Ben Hadad I세, B.C. 900-860)와 동일 인물로 알려져 있다(T.R.Hobbs). 그리고 본장에 기록된 사건은 이스라엘과 아람의 계속적인 전투 중 간헐적으로 나타났던 평화 기간에 발생한 것으로 추측한다(K.W.B hr). 왜냐하면 벤하닷 I세가 생존한 시기에는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가 적대적 관계에 있었기 때문이다. 한편 본장의 중심인물인 나아만의 이름은 우가릿어(Ugarit)로서 '공평한', '은혜로운'이라는 뜻(Gray)인데 혹자는 이 이름이 아람인이 섬기는 신의 이름에서 유래한 것(Ewald)으로 보기도 한다. 또한 당시의 아람에서 군대 장관이라는 직책은 군대의 총지휘권을 가진 자를 가리키는 것이며 그 아래에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이라는 직위 서열로 군대 조직이 구성되어 있었다(1:9 주석 참고).
그 주인 앞에서 크고 존귀한 자니 - 여기서 '크고'라는 뜻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전장(前章)에서 수넴 여인을 가리킨 단어인 '귀한'(4:8)이라는 말과 동일한 용어 '게돌'이다(4:8 참고). 그리고 '존귀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의 문자적인 뜻은 '한 권위자가 스스로 얼굴을 들어 올리는 행위'에서 나온 것(Gray)인데 일반적으로 존경스러움을 나타내는 단어로 쓰인다(3:14). 이처럼 나아만은 벤하닷의 군대 장관으로서 큰 영화를 누렸던 자였다. 그렇기 때문에 본절의 표현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면 '영예를 얻었다', 혹은 '존경을 받았다'라고 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이는 여호와께서 전에 저로 아람을 구원하게 하셨음이라 - 본절에서 이방인이 얻은 승리를 여호와의 구원으로 인한 결과라고 언급하고 있는 것은 구약 전반에서 보더라도 참으로 특이하다. 그러나 이것은 이스라엘의 유일신 사상에서 파생된 자연스러운 논리적 결과이다(T.R.Hobbs). 즉 이는 온 천하에 유일한 신(神)이신 여호와께서 이방인의 삶까지도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는 것을 나타낸 독특한 히브리적 개념인 것이다(암 9:7;사 10:13, Lange Commentary). 그래서 여기에 특별히 언급된 아람의 구원은 이스라엘과의 전투에서 얻은 승리를 언급한 것으로 해석된다(T.R.Hobbs). 한편 요세푸스에 따르면 나아만은 아람의 배반자인 이스라엘의 아합 왕(B.C.874-853)을 살해한 자였다고 한다. 또한 역대하 18장의 아람어 탈굼(Targum) 역본에도 이와 동일한 사실을 시사하고 있다.
저는 큰 용사나 문둥병자더라 - 나아만은 이스라엘과의 싸움에서 승리를 거두는 등 많은 공적을 세운 능력 있는 군대 장관으로서 영화를 누렸지만 불행하게도 문둥병에 걸리고 만다. 그렇지만 문둥병자를 사회에서 추방하는 이스라엘(레 13장-14:57)과는 달리 아람에서는 문둥병자라도 왕과 아주 가깝게 지낼 수 있었다고 한다(Keil &Delitzsch, Vol. , p.317). 그러나 그가 이스라엘에까지 도움을 구하러 온 것을 보면 그의 문둥병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있어서 대단한 지장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Thenius). 이러한 사실에 대해 혹자는 나아만이 문둥병에 걸려서 앗수르를 치는데 더 이상의 공헌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Wycliffe). 한편 본절에서 '큰 용사'라는 표현은 '좋은 군인'이라는 의미 이상의 아무런 뜻이 아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5:2] 바아람 야치우 기두딤 바이쉬부 메에레츠 이스라엘 나아라 키타나 바티히 리피네 에세트 나아만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전에 아람 사람이 떼를 지어 나가서 - 여기서 '전에'라는 시간을 나타내는 전치사는 언제라고 분명히 그 시기를 밝히고 있지는 않지만 본장의 사건이 일어나기 이전의 '때'를 가리킨다. 아합 왕이 라못 길르앗을 원정한 이후로 이스라엘과 아람 사이에는 조그만 싸움들이 잦았다. 본절은 그러한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해서 이러한 표현을 한 것이다. 한편 여기서 '떼를 지어'라는 말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는 '자르다', '침투하다'라는 어근 동사 '가다드'의 변형인 '게두딤'으로서 흔히 '몰래 습격하는 비적 떼'를 가리키는 용어로 쓰인다(삼상 30:8,15). 또한 헬라어 역본들에는 '모노조노스'로 번역되어 있는데 이것은 벧트를 하나밖에 차지 않은 가벼운 복장 차림을 한 군대의 병사들을 가리킨다(3:21 참고). 그리고 중세 헬라어 역본들을 보면 '도적 떼'라는 뜻의 단어 '페이라테리온'이 첨가되어 아람 사람들의 떼가 비적, 혹은 도적 떼임을 더욱 분명히 나타내고 있다.
작은 계집 아이 하나를 사로잡으매 - 고대의 도적 떼들은 보물의 약탈뿐 아니라 종으로 삼을 사람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일이 성행했다(Pulpit Commentary). 그러나 본절에 언급된 작은 계집 아이는 자신을 잡아온 사람들에게까지 탁월한 용기와 자비를 보이고 있다. 그녀는 고향과 친지들과 떨어져 낯선 곳에서 고생하고 있지만 괴로워하지 않고, 복수하기보다는 오히려 친절을 베푼다(마 5:44). 그렇기 때문에 혹자는 본절의 사건이 하나님의 섭리를 나타낸 것이라고 한다(Wycliffe).
수종들더니 - 이것을 히브리어 문자대로 직역해 보면 '앞에 있다'라는 뜻이 된다. 이것은 4:12,15에 기록된 '앞에 서 있다'라는 말의 단축형으로 보기도 하며 '존경'을 표시하기도 하며 심지어 '숭배'의 의미를 나타내기도 한다(T.R.Hobbs). 그뿐만 아니라 이 용어는 맹세를 나타내는 구문에서도 사용된다(5:16 '나의 섬기는').
성 경: [왕하5:3] 바토메르 에레 기비리타흐 아할레 아도니 리피네 하나비 아세르 비쇼미론 아즈 에에소프 오토 미차라이토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사마리아에 계신 선지자 - 이는 엘리사 선지자를 가리키는 말인데 엘리사는 사마리아에 집을 갖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6:32) 그곳에서 때때로 거주했기 때문에 그렇게 칭함을 받은 것 같다(Keil & Delitzsch, Pulpit Commentary).
저가 그 문둥병을 고치리이다 - 하나님은 아람 사람이 이스라엘 땅에서 사로 잡은 '작은 계집 아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명성이 이방 땅에도 전파되도록 하셨다. 이 약한 소녀를 통한 이와 같은 하나님의 역사는 이방에까지도 하나님의 절대적인 주권이 미치고 있음을 의미한다(벧전 2:13).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안목으로 판단했을 때 지극히 비천한 자를 종종 들어 쓰시며(고전 1:28) 그들을 사용하심으로써 하나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이다.
성 경: [왕하5:4] 바야보 바야게드 라도나이브 레모르 카조트 비카조트 디비라 하나아라 아세르 메에레츠 이스라엘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이러이러 하더이다 - 이와 같은 표현은 대화 시에 자주 사용되는 것으로서 전기 선지서에 많이 나타난다(9:12;수 7:20 등). 이처럼 나아만이 이스라엘에서 온 계집 아이의 말을 왕에게 전함으로 인해 엘리사 선지자의 명성은 더욱더 널리 아람 땅에 전파된다.
성 경: [왕하5:5] 바요메르 멜렉크 아람 레크 보 비에쉴라하 세페르 엘 멜렉크 이스라엘 바옐레크 바이카흐 비야도 에세르 키키레 케세프 비세세트 알라핌 자하브 비에세르 할리포트 비가딤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내가 이스라엘 왕에게 글을 보내리라 - 본절을 통해서 나아만 장군이 아람 왕으로부터 얼마나 많은 총애를 받고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K.W.B hr, Pulpit Commentary). 한편 아람 왕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왕의 이름을 본문에서는 밝히지 않고 있다. 그런데 엘리사가 활동한 것은 여호람, 예후, 여호아하스, 요아스 4대에 걸친 시기, 즉 B.C.848-797년이었다. 그러나 본장에 등장하는 아람 왕이 8장에 나오는 벤하닷 I세와 동일인이라고 간주할 때 본장의 사건이 일어난 시기는 벤하닷 I세가 암살되기 이전, 즉 B.C. 842년 이전이었음이 틀림없다. 따라서 그때에 북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왕은 바로 여호람이 되는 것이다(T.R.Hobbs, Word Biblical Commentary, p.63-64).
나아만이 곧 떠날새 은 십 달란트와 금 육천 개 - 나아만이 이스라엘을 향해 떠날 때 가지고 간 선물은 실로 엄청난 것이었다. 한 달란트는 3,000세겔에 해당되며 무게로는 약 34.27kg에 해당되므로(출 38:25,27;왕상 16:24;계 16:21) 은 십 달란트는 약 342kg에 해당된다. 그리고 금 육천 개는 두 달란트에 해당되며 무게는 약 68.4kg에 해당된다. 또한 이것을 카일(Keil)의 계산법에 따라 환산해 보면 은 십 달란트는 옛 독일의 화폐로 약 25,000 탈러(Thaler)이고 금 육천 개는 약 50,000 탈러이다. 그러니까 영국 화폐는 약 3,750파운드와 7,500파운드에 각각 해당된다. 한편 그가 선물로 갖고 간 의복 열 벌은 매우 높은 가격의 선물로서 상대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표현하는 한 방법이었던 근동 지방의 풍습을 반영한 것이다(Pulpit Commentary). 이러한 풍속과 습관은 오늘날까지도 이 지방에서는 지속적으로 내려온다(Keil & Delitzsch). 이처럼 나아만이 가지고 간 선물은 상당한 것으로 그 당시 나아만의 권세와 부귀가 어떠했는지 가히 짐작할 수 있다(Pulpit Commentary).
성 경: [왕하5:6] 바야보 하세페르 엘 멜렉크 이스라엘 레모르 비아타 키보 하세페르 하제 엘레카 힌네 샬라히티 엘레카 에트 나아만 아비디 바아사피토 미차라이토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본절에서 사용하고 있는 용어는 외교문서에서 쓰는 공식적인 용어이다(T.R.Hobbs). 그리고 본절에 나타난 문서의 내용을 살펴보면 엘리사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다. 이것은 아람 왕이 엘리사를 일종의 '우두머리 마술사나 이스라엘 종교의 대제사장'(Menken)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러한 일을 왕에게 부탁하면 왕의 수하에 있는 이 선지자가 병을 고쳐 줄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한편 본절에 나타난 '고쳐주소서'라는 표현은 '모으다', '회복시키다', '제거하다'라는 뜻의 히브리어 '아사프토'를 번역한 말이다. 이는 병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 달라는 탄원과 함께 간절한 열망을 내포하고 있다.
성 경: [왕하5:7] 바예히 키키로 멜렉크 이스라엘 에트 하세페르 바이크라 비가다이브 바요메르 하엘로힘 아니 리하미트 우리하하요트 키 제 숄레아흐 엘라이 레에소프 이쉬 미차라이토 키 아크 다우 나 우리우 키 미트아네 후 리
주제1: [나아만의 문둥병 치유]
주제2: [아람 왕의 친서]
자기 옷을 찢으며 - 본절에서 이스라엘 왕은 극한 슬픔과 분노의 표현으로 옷을 찢는다(창 37:29; 44:13;민 14:6;수 7:6;삿 11:35). 이것으로 보아 당시의 이스라엘이 아람의 위압에 눌려 있었음을 가히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왕이 이렇게 분노한 데는 다음과 같은 이유가 있다. (1) 아람 왕의 말을 오해했기 때문이다. 즉 이스라엘 왕은 아람 왕의 말을 왕 자신이 그 문둥병을 고쳐 달라는 말로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 이 병은 하나님만이 고칠 수 있는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죽이고 살리는 것과 같이 중한 병으로 취급되었기 때문이다(신 32:39;삼상 2:6). 따라서 한낱 인간에 불과한 자신에게 이러한 중대한 병을 고쳐 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공연히 시비를 거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K.W.B hr, Pulpit Commentary). (2) 엘리사가 이적을 행하는 줄 몰랐던 왕으로서는(8절) 이렇게 오해한 것이 당연했다. 왜냐하면 벤하닷은 아합 왕 때에도 이와 같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왕상 20:3-6). 한편 히브리 민족은 옷을 찢는 행위 이외에도 슬픔이나 분노를 나타내기 위해 머리에 티끌을 뿌리거나(수 7:6) 흙이나 재를 뒤집어쓰기도 하였다(삼하 13:19;에 4:1,3;욥 2:8). 그리고 정수리의 머리털을 면도해 버리거나(렘 7:29) 얼굴과 가슴을 치고 뜯기도 하였다(눅 18:13).
[고린도전서 헬라어 성경말씀]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노라(고전 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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