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생각으로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욥 11:7-12)
욥11:7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성 경: [욥11:7]
주제1: [소발의 첫 번째 충고]
주제2: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온전히 알겠느냐 - `오묘'란 원어상으로 `심사 숙고', `깊은 것'(RSV, the deep thing)등을 뜻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오묘'란 하나님의 깊은 마음속에 감추어진 깊은 뜻을 가리킨다. 그리고 `측량하며'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마차'는 `발견하다'(RSV, find out; NASB, discover)의 뜻을 갖는다. 따라서 본문 전반 절은 욥과 같이 말이 많고(2절) 어리석은 자가 결코 하나님의 깊은 뜻과 비밀들을 발견할 수도 깨달아 알 수도 없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언급한 것이다. 한편 본문 후반 절의 문자적 의미는 `네가 전능자의 한계를 발견할 수 있겠느냐'(RSV, Can youfind out the limit of the Almighty)의 뜻이다. 즉, 본문 후반절의 `온전히 알겠느냐'의 히브리 원어는 전반 절의 `측량하며'(팀차)란 말과 같은 잘못된 것으로 보고 후자의 `팀차'를 `네가 도달하다'(you reach)로 수정 번역한다(Driver & Gray). 그러나 본문은 동일 어휘의 반복을 통해 전달하고자 하는 뜻을 강화시키고 있다고 봄이 무난하다.
욥11:8 하늘보다 높으시니 네가 어찌 하겠으며 음부보다 깊으시니 네가 어찌 알겠느냐
성 경: [욥11:8]
주제1: [소발의 첫 번째 충고]
주제2: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하늘보다 높으시니...음부보다 깊으시니 - 본절과 다음 절에서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의식 속에 있었던, 우주를 구성하는 네 가지 영역(하늘, 음부, 땅, 바다)을 비교대상으로 삼아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한다(Anderson). 특히 본문의 `어찌하겠으며'란 문자적으로는 `마 티팔'로서 `무엇을 할 수 있겠느냐'(NASB, RSV, NIV, What can you do)를 뜻한다. 이것은 그 어떤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초월적인 하나님의 지혜를 욥으로서는 도무지 알 길이 없으리라는 말이다. 한편 흔히 피조 세계의 광대함을 나타내기 위하여 네 개의 서로 다른 측량 단위가 사용되는데, 그것은 `높이', `깊이', `길이', `넓이'등이다. 이중 `높이'와 `깊이'는 `하늘'과 `음부'와 관련되어 사용되며(시 139:8; 롬 10:6, 7), `길이'와 `넓이'란 `땅'과 `바다'와 관련되어 쓰인다(11:9; 37:10; 애 2:13).
욥11:9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성 경: [욥11:9]
주제1: [소발의 첫 번째 충고]
주제2: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 - `도량'이란 그 원형이 `마드'로서 `규모'(measure)를 뜻한다. 그리고 영역본들 중 대부분은 이 단어의 주어를 비인칭(NASB, RSV, Its)을 사용하여 옮기고 있다. 이럴 경우 그 주어는 하나님의 지혜, 또는 깊으신 뜻 등을 가리키는 셈이다. 결국 본절 역시 앞절(8절)처럼 하나님 지혜의 초월성을 나타내는 비유적인 표현이라 하겠다.
욥11:10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 개정하시면 누가 능히 막을소냐
성 경: [욥11:10]
주제1: [소발의 첫 번째 충고]
주제2: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이 두루 다니시며 사람을 잡아 가두시고...능히 막을소냐 - 이는 8,9절에 암시된 초월적이신 하나님께서 어떤 시공(時空)에 제한받지 않으시고 땅 끝 이곳저곳을 다니시사(욥과 같이)어리석고 범죄한 자들을 잡아 심판하시고자 하실 때 그 어느 누구도 막거나 제지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개정하시면'의 히브리어 `카할'은 죄인들을 정죄 또는 심판할 목적으로 `회중을 모으다', `소집하다'(NASB,calls an assembley; NIV, convene a court)는 뜻이다(잠 5:14; 겔 16:40). 이와 같이 욥의 고난이 범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이 본절에서도 뚜렷이 드러난다.
욥11:11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악한 일은 상관치 않으시는 듯하나 다 보시느니라
성 경: [욥11:11]
주제1: [소발의 첫 번째 충고]
주제2: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하나님은 허망한 사람을 아시나니 - 원문에 의하면 본문 서두에는 `키'(For, RSV, NASB, KJV, For ; NIV, Surely)라는 연결사가 있다. 이것은 소발이 본문을 근거로 그의 주장을 강하게 변론하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허망한'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솨으'는 `헛된'(NJV, vain), `아무것도 아닌'(of nothingness)의 뜻이다. 이는 본서에서 욥의 친구들에 의해 자주 언급되는 악한 사람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보인다. 즉 그 속에 지혜, 진리가 없고 거짓으로 가득 찬 사람을 묘사하는 말이다.
욥11:12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 그 출생함이 들나귀 새끼 같으니라
성 경: [욥11:12]
주제1: [소발의 첫 번째 충고]
주제2: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뜻]
허망한 사람은 지각이 없나니...새끼 같으니라 - 여기에서 `허망한'이란 원문상으로 `나바브'로서 11절의 `허망한'이란 말과 어휘가 다르나 그 의미 면에서는 유사하다. 그리고 본문 전반 절의 의미는 문자적으로 `허망한 사람의 지각 있게 될 것이다'(KJV, Vain man would be Wise ; RSV, a stupid man will get understanding ;NASB, an idiot will become interllingent)의 뜻이다. 이와 같은 의미는 후반 절과 연결될 때 그 뜻이 더욱 확연해진다. 본문 후반 절의 문자적 의미는 분별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영역 본 RSV 나 NASB 등은 각각 이것을 `들나귀 새끼가 사람으로 태어나게 될 때'(When a wild ass's colt is born an man ; When the wild ass is born tame)란 뜻으로, 그리고 하틀리(J. E. Hartley)는 `들나귀가 나귀로 태어날 수 있음 같이'(as awild ass can be born a donkey)란 의미로 이해한다. 아무튼 이런 다양한 본문 해석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적 의미는 결국 본문 후반 절의 내용이 불가능한 것처럼 전반 절의 내용, 즉 허망한 자가 지각이 있게 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다. 이것은 욥과 같이 어리석고 속이 빈 허망한 자는 결코 하나님의 오묘하신 깊은 뜻, 지혜를 깨달아 알게 될 수가 없으리라는 소발의 단정을 보여준다.
[여호수아 23장 설교말씀] 여호수아의 마지막 신앙 권면(수 23: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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