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3장에서는 사데 교회에 예수님이 말씀한다. 사데 교회는 살아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교회다. 예수님이 사데 교회에 회개하라고 했다. 만약에 회개하지 않으면 내가 도둑같이 이른다고 했다. 성도는 항상 영적으로 깨어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해야 한다.
사데 교회에 보낸 예수님 편지(계 3:1-6)
Ⅰ. 서론 부분을 살펴보자.
1. 이 편지의 수신자는 "사데 교회의 사자"이다. 사데는 트몰러스 산록에 자리 잡은 루디아의 옛 도시로써 소아시아 지방의 수부였다고 한다. 그리고 요한의 설교를 듣고 그 지역에서 제일 먼저 회개한 도시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사데 교회는 맨 먼저 기독교에서 떨어져 나갔으며, 그리하여 제일 먼저 폐허가 된 도시라고도 한다. 그 폐허는 오늘날에도 볼 수 있는데, 거기에는 어떤 교회의 흔적도 없었다.
2. 편지의 발신자는 주 예수이시다. 여기 그의 모습은 이렇게 묘사되고 있다. "그는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이시다. 그런데 1장 4절에 의하면 일곱 영은 "보좌 앞에" 있는 영들이라고 한다.
(1) 주님은 일곱 영을 가지고 계신다고 하는데, 다시 말해서 여러 가지 다양한 능력과 은혜와 작용을 나타내는 성령을 가지고 계신다는 뜻이다. 주님은 한 몸이시면서도 여러 다양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으신데, 여기 일곱이라고 표시된 것은 교회의 숫자가 일곱이며, 교회의 사자들의 숫자가 일곱이기 때문이다. 이는 곧 모든 교역자들과 모든 교회에는 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한 영력(營力)의 공급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위한 것이다. 그 영력(營力)은 교회가 확장되고, 유지될 수 있도록 그 교회의 교역자들에게 영향을 주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개선되지 못할 때는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그때까지는 성령이 그들에게서 철수하지 않으신다. 교회도 개개 신자들과 마찬가지로 각각의 영력(營力)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 편지는 쇠퇴해 가고 있는 교역자와 교회에 보내지고 있는데,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온전한 능력을 가진 일곱 영, 곧 성령을 가지고 계시며 따라서 그들은 그에게서 그들의 소생할 수 있는 활동력을 공급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자각할 수 있게 되었다.
(2) 주님은 교회의 사자들인 일곱 별을 가지고 계신다. 그들은 주님에 의해 파견되었고 또한 주님께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에, 그들은 충성을 다해야 하며, 열심을 다해야 한다. 그 교역자들은 주님께서 고용한 교역자들이며, 주님은 교회의 이익을 위해 그 교역자들과 사귐을 가지고자 영적인 영향력을 구사하고 계신다. 보통 성령은 목회를 통해서 활동하시며, 목회는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효과를 낼 수 없다.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의 손이 이 양자를 모두 지탱해 주신다.
Ⅱ. 이 편지의 핵심 부분을 살펴보자. 여기에는 주목할 만한 점 한 가지가 있다. 다른 편지들에서는 먼저 그리스도께서 그 교회들의 잘한 점을 칭찬하고 나서, 그들의 잘못에 대해 책망하고 있는데 반해 이 편지(와 그리고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는 그렇지 않다.
1. 먼저 책망의 말씀, 그것도 매우 심한 말씀에서부터 시작하고 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 위선과 신앙의 쇠퇴가 곧 그 교회와 그 교회의 행위를 잘 아시는 분으로부터의 책망이다.
(1) 이 교회의 평판은 매우 좋게 나 있다. 이 교회는 번창하는 교회라는 명성을 획득하고 있었으며, 순수한 교리라든가, 그들 사이에 있었던 일치 그리고 예배와 품위 그리고 질서에 있어서의 통일성 등으로 해서 살아 있는 교회라는 이름을 듣고 있었다. 그들 사이에 불행한 분열의 조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볼 때는 만사가 순조롭고 잘된 것이라고 보였다.
(2) 그러나 이 교회의 실제는 소문과 같은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이름은 살아 있으나 실제로는 죽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이 없었으며,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생의 원칙이 없었다. 그들이 아직 전적인 소멸의 지경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지만, 그들의 영혼과 그들의 봉사, 그 교회의 교역자들의 목회와 기도와 설교와 대화는 크게 죽고 있었으며, 교인들도 설교를 듣는 거나, 기도하는 것이나 대화에 있어서 역시 크게 죽고 있었다. 아직 목숨이 약간 붙어 있기는 하나, 거의 끝장이 난 상태에서 죽음 직전에 놓여 있었다.
2. 이러한 퇴보된 교회에 대해 우리 주님께서는 가장 적절한 충고를 주신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다니 것을 굳게 하라"(2절).
(1) 주님은 그들에게 깨어 일어나라고 권고하신다. 그들의 죄로 말미암은 죽음과 타락의 원인은 그들이 깨어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깨어있지 못하면 우리는 우리의 기반을 잃어버린다. 따라서 우리는 죄와 사탄과 그리고 우리의 선한 생명과 능력을 무너뜨리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
(2) 주님은 그들에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고 권고하신다. 어떤 사람들은 이것이 사람들에 관한 권고라고 이해하고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순결함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이 극소수나마 있었다. 그러나 그들도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죽음 일보 전에 있었다. 우리가 우리 주변이 온통 죽음과 멸망의 분위기에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도 우리 자신을 생명과 "선한 능력" 가운데 간직하고 있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또는 우리가 다음과 같은 예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같이, 이것은 행위에 관한 것이라고도 이해할 수 있다. "내 하나님 앞에서 네 행위의 온전한 것(또는 충만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들에게는 부족한 것이 있었다. 그들에게 껍데기는 있었으나 알맹이는 없었다. 그들에게 형체는 있었으나 영혼은 없었고, 그림자는 있었으나 실재는 없었다. 내용물이 부족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텅 비고 헛된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거룩한 요망으로 채워진 것이 아니었다. 그들의 구제도 참된 자비에서 우러나온 것이 아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영혼의 참된 봉헌이 결여된 채 지켜졌다. 그들에게는 그들의 외적인 결핍된 상태에서는 그 형태마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3)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 자신을 돌아보고,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라"고 권고하신다(3절). 그들은 그들이 어떤 것을 받고 또 들었으며, 또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메시지를 받았고, 그들이 받은 자비와 은혜의 표가 어떤 것인지, 어떤 설교를 들었는가를 기억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받았으며 또 들었는가, 하나님의 자녀의 영향력이 그들의 영혼에 어떤 영향을 끼쳤고, 또 하나님의 말씀과 의식들에 대해 그들이 어떠한 애정심을 품게 되었는지, 그들이 처음에 복음의 말씀을 들었을 때 어떻게 환영하였었는가를 또한 기억하여야 한다. "그때에 너희가 말하던 축복은 어디로 갔는가?"
(4)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받은 것을 잃지 않도록 굳게 지키도록 권고하신다. 그리고 그들이 신앙생활을 잃어버렸으니 만큼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회개하라"라고 권고하신다.
3. 주님은 그의 권고가 무시되지 않도록 위협적인 말씀을 덧붙이신다.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3절).
(1) 사람들이 그들의 품위 있는 태도를 잃어버렸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신다. 그때 그들의 품위 있는 태도를 잃어버린 죄인들은 심판주의 모습에서 위협을 느낀다.
(2) 죽음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주님의 심판은 매우 신속하고도 놀라운 것이다. 그들의 영적인 죽음은 그들을 방심하게 만들며, 이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노여움을 야기시키지만, 그들은 이에 대해 통찰력을 가질 수 없게 되고, 또 이에 대한 준비를 갖추지 못하게 된다.
(3) 그리스도의 그러한 방문은 그들에게 커다란 손해를 가져다준다. 주님은 도적같이 오신다. 오셔서 그들에게 남아있는 즐거움과 자비를 빼앗아 버리신다. 그러나 결코 속임수가 아니라, 정정당당한 방법으로 빼앗아 버리신다.
4. 우리의 복되신 주님은 그들이 비록 죄 많은 사람들이지만 결코 위로와 격려를 잊지 않으신다. "심판 중에서 그는 자비를 베푸신다"(4절).
(1) 사데에 남아 있는, 비록 숫자는 적지만 충실한 남은 자들의 영예를 주님은 기억하시고 언급하셨다.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있다. "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던 그 당시의 시대와 장소에 널리 횡행하던 부패와 부정에 물들지 아니한 사람들이다. 하나님은 그의 곁에 남아 있는 적은 숫자의 사람들이라도 그들을 기억하신다. 그리고 그들의 숫자가 적을수록 하나님은 그들을 그만큼 귀하게 보신다.
(2) 주님은 그들에게 매우 귀한 약속을 하신다.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그들로 의로움과 인정받음과 위로를 나타내 주는 흰옷이거나 또는 저 세상에서 받을 명예와 영광의 흰옷을 입게 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의 낙원에서 즐거운 걸음을 걷게 될 것이다. 그때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얼마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걸어갈 것인가! 그것은 그들의 충성이 그들에게 가져다준 고결함에 합당한 명예이다. 그리고 그것이 법적인 것이 아니라, 복음적인 가치관에서 온 것이며, 그들의 공적이 아니라 은혜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기는 해도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특권을 부여하신 것은 매우 합당한 처사이다. 이 땅에서 참으로 거룩한 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으며, 세상의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자는 저 세상에서 명예와 영광의 흰옷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걸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에게 합당한 상급이다.
Ⅲ. 이제 우리는 이 편지의 결론 부분을 살펴보자. 앞서의 편지와 같이 여기에도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1. 이기는 자들에게 주는 커다란 상급이 약속되었다(5절). 그것은 이미 언급한 바가 있는 편지들의 경우와 마찬가지이다.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옷을 입을 것이요," 순결한 은혜에 대한 상급은 온전히 순결한 영광이 될 것이다. 거룩함이 온전하면 그 자체가 상급이 되기도 한다. 영광이란 온전해진 은혜이다. 그 구별은 종류상의 구별이 아니다, 다만 정도의 차이일 뿐이다.
그런데 그 경우에 매우 합당한 또 다른 약속이 첨부되었다.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1) 그리스도께서는 생명의 책을 가지고 계신다. 그 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는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다.
① 그것은 영원한 선택의 책이다.
② 그것은 악한 세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았으며, 경건한 삶과 능력을 간직한 자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책이다.
(2)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택하신 그의 충실한 성도들의 이름을 결코 그의 생명책에서 지우시지 않으실 것이다. 사람들은 세례가 신앙 고백을 통해서 그들의 이름을 교회의 명록 속에 써넣게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이름이 영적인 삶을 동반하지 않는, 다만 세상에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그러한 이름이라면 그러한 이름은 지워지고 말 것이다. 때로 그러한 이름은 그들의 악행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게 되며 그들이 죽기도 전에 그 이름이 지워지기도 한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의 이름은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
(3)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과 그의 모든 천사들 앞에서 이 생명의 책을 내놓으시고 거기에 기록된 이름들을 시인하여 주신다. 그 생명책이 열렸을 때 그리스도는 마치 재판장과 같이 이를 판정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 그들의 대장으로서 그들을 이끌고 하늘로 개선하면서 그들을 아버지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고 그들의 이름을 시인하실 것이다. "보십시오, 당신께서 나에게 맡기신 자녀들이 여기 있습니다. " 이때에 그들이 받는 상급과 명예가 얼마나 놀랍고도 큰 것인가!
2. 온 우주적인 경각심을 촉구하는 명령의 말씀으로써 이 메시지는 끝나고 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모든 인간은 반드시 주목해서 들어야 한다. 비록 한두 사람에게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인 것같이 보이지만, 그 말씀은 모든 사람들을 가르치는 말씀이시다.
[창세기 고고학 성경공부] 창세기 일반 세계사와 문화 종교적인 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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