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9장에서는 메시아 탄생에 대해서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이 땅에 오셨다. 하나님의 아들이면서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창세 전에 선택한 백성을 구원하셨다.
메시아 탄생과 통치 예언(사 9:1-21)
흑암의 땅에 큰 빛이 비췸 (1-2)
• 9:1 전에 고통하던 자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스불론은 갈릴리의 서쪽 지역이고 납달리는 갈릴리의 북쪽 지역이다. 해변 길은 갈릴리 바다 해변을 말한다. 요단 저편은 요단 동부 팔레스타인의 최북단 이스라엘과 이방 나라의 접경 지역으로 이방 나라의 침략을 자주 받았으며 또한 이방인들이 많이 들어와서 살았기 때문에 이방의 갈릴리라는 별명을 붙이게 되었다. 그 지방에는 이방 풍속이 많이 들어왔고 우상도 많이 섬기는 곳이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멸시를 받는 흑암의 깊은 곳이었다. 그 흑암의 땅에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된다는 것이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예언적 완료 상태로서 장차 그리스도께서 탄생하셔서 갈릴리에 오셔서 복음을 전파하실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이 들어가면 흑암의 땅이 영화롭게 된다.
• 9: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하던 자에게 빛이 비취도다
복음을 알지 못하는 곳은 영적 흑암의 곳이요 역정 사망의 그늘진 곳이다. 그 곳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면 하늘의 빛, 영적 생명의 빛이 비취게 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흑암과 사망의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온 세계에 복음의 밝은 빛을 비추어 주셨다.
메시야의 출생과 그 왕국 (3-7)
• 9: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케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의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그리스도의 빛이 비췰 때는 모두 다 즐거워한다. 이 나라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택한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나라가 이루어지며 그 나라를 하나님이 창성케 하신다.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과 하나님의 나라에 참여한 즐거움은 추수할 때의 농부들의 즐거움과 같고, 승전한 자들이 전쟁 탈취물을 나누는 때의 즐거움과 같다.
• 9:4 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이것은 죄와 마귀에게 포로가 되고 억눌린 택한 백성들을 예수그리스도께서 복음으로 구원해 주시고 자유를 주실 것을 예언한 것이다(눅 4:18-19).
멍에는 고통의 멍에를 가리킨다. 마태복음 11:28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라고 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면 모든 고통과 수고의 멍에를 다 벗겨 주시고 영적 자유와 해방을 주신다.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는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로 인한 고통과 압박을 받는 자들을 해방시켜 영적 자유와 생명을 주실 것을 가리킨다. 그리스도의 해방 운동은 영적 해방이며 정치적 제도적 해방이 아니다. 고린도전서 7:20-22에 “각 사람이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이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라고 했다.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기드온의 300명 용사가 미디안 군대를 물리치고 승리한 날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가 죄와 마귀에서 해방되어 영적 자유와 해방을 얻는다는 것이다.
• 9: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의 갑옷과 피 묻은 복장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장차 이루어질 그리스도의 나라는 평화의 나라가 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어지러이 사우는 군인의 옷이나 피 묻은 복장들이 필요가 없다. 그것들은 불에 섶같이 속히 불살라진다는 것이다.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속받은 영적 세계는 화평하고 기쁜 세계이다.
• 9: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그리스도께서 탄생할 것을 가리킨다.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영원 전부터 계신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입으시고 사람이 되어 오실 것을 가리킨다.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정사는 정치 즉 일 처리하는 것을 가리키는데 그리스도의 정사를 마귀가 당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성도가 그리스도의 뜻대로 할 때에 세상과 마귀를 이기게 된다. 또한 이 세상 모든 정치도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신다. 다음에 나타내는 이름들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가리킨다.
① 기묘자(펠레)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인간 지각에 초월한 하나님의 신적 역사를 하실 것을 가리킨다.
② 모사(요에츠) 그리스도께서 완전한 지혜를 소유하시고 세상의 모사가 미치지 못할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이루어 모든 것을 실패 없이 해 나갈 것을 가리킨다. 사람의 모략이나 마귀의 모략은 예수의 모략을 감당하지 못한다.
③ 전능하신 하나님, 영존하시는 아버지 그리스도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으로 대접받으실 것과 또 하나님 아버지를 세상에 보여 주실 것을 가리킨다. 요한복음 14:9에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라고 했다.
④ 평강의 왕 그리스도는 평강을 주시는 왕이시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과의 화목을 이루어 주시는 왕이시고 우리 마음속에 화평을 주시는 왕이시다. 환난 당하는 자에게 평강을 주시고, 병든 자에게 평강을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화평이 있다.
• 9: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위에 앉아서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자금 이후 영원토록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그리스도께서는 완전 무결한 정치로 통치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나라는 변함이나 동요가 없고 평강이 넘쳐흐른다.
다윗의 위는 다윗의 왕통을 계승할 왕위를 말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으로 탄생하셔서 영원한 왕위에 오르실 것을 가리킨다(삼하 7:13). 그 그리스도의 나라와 위는 견고하다.
공평과 정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그리스도의 나라는 절대 공평하고 정의롭다. 거기는 불공평이나 불의가 털끝만큼도 없다.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나라를 이루어 나간다. 하나님의 열심은 이 나라를 반드시 이루어 놓고야 말 것이다.
교만하여 거역하는 자는 벌받음 (8-12)
• 9:8-10 주께서 야곱에게 말씀을 보내시며 그것을 이스라엘에게 임하게 하셨은즉 모든 백성 곧 에브라임과 사마리아 거민이 알 것이어늘 그들이 교만하고 완악한 마음으로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나 우리는 다듬은 돌로 쌓고 뽕나무들이 찍혔으나 우리는 백향목으로 그것을 대신하리라 하도다
에브라임과 사마리아는 이스라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조상 때부터 말씀을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가만하고 마음이 완악하여서 그 말씀을 듣지 않았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여 벽돌집들이 무너지고 뽕나무가 찍히게 되었다. 그들은 그때에도 회개하지 않고 말하기를 벽돌이 무너졌으니 대신에 다음은 돌로 쌓고, 뽕나무가 찍혔으나 백향목으로 대신하겠다고 하며 더욱더 하나님을 반항하였다. 벽돌이 무너지고 뽕나무가 찍혔으면, 벽돌을 무너뜨린 분이 누구인가? 뽕나무가 찍히게 하신 분이 누구인가?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실까? 하고 그 실패의 근본원인이 어디에 있는 가를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 범죄 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파괴가 온 것을 깨닫고 회개해야 한다. 그 원인을 다른 데서 찾지 말고 하나님의 징계인 줄 깨닫고 즉시로 엎드려 잘못된 것을 회개해야 한다. 성도가 어려운 일을 당할 때에 성경 말씀대로 행했는가? 처음 사랑을 잃지 않았는가? 그것을 찾아 회개하고, 인본주의와 교만으로 행했던 것을 찾아 회개해야 한다.
• 9:11-1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르신의 대적을 일으켜 그를 치게 하시며 그 원수들을 격동시키시리니 앞에는 아람 사람이요 뒤에는 블레셋 사람이라 그들이 그 입을 벌려 이스라엘을 삼키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 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르신의 대적 “르신”은 아람 왕이므로 “르신의 대적”은 이스라엘의 대적되는 르신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적되는 아람과 블레셋 사람들을 보내서(12절) 이스라엘을 삼키게 하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하나님 말씀을 거역하고 징계를 받고도 깨닫지 못하고 나가는 나라는 하나님이 대적을 보내서 전쟁으로 징계하신다. 이스라엘이 징계를 받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자기들의 힘으로 더 잘해보겠다고 나가기 때문에 하나님이 대적을 불러다가 다 멸망시키는 데까지 이른 것이다.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망한다.
그릇된 지도자로 인하여 이스라엘이 멸망케 됨 (13-17)
• 9:13-16 이 백성이 오히려 자기들을 치시는 자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며 만군의 여호와를 찾지 아니하도다 이러므로 여호와께서 하루 사이에 이스라엘 중에서 머리와 꼬리며 종려가지와 갈대를 끊으시리니 머리는 곧 장로와 존귀한 자요 꼬리는 곧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라 백성을 인도하는 자가 그들로 미혹케 하니 인도를 받는 자가 멸망을 당하는도다
이스라엘이 맞으면서도 회개하지 않고 여호와를 찾지도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큰 재앙이 하루 사이에 갑자기 임한다는 것이다.
머리는 장로와 존귀한 자를 가리키고, 꼬리는 거짓말을 가르치는 선지자를 가리킨다. 종려가지는 귀인을 가리키고, 갈대는 천한 사람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날에는 장로, 선지자, 귀한 사람, 천한 사람을 다 한꺼번에 끊으신다는 것이다. 그들이 그렇게 망하게 된 이유는 장로와 선지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잘못 인도했고 백성들은 그것을 따라갔기 때문이다. 지도자들은 진리를 떠나 거짓말로 가르쳤고 백성들은 거기에 미혹되어 곁길로 나갔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잘못 인도하는 장로와 선지자를 멸망시키시고 잘못된 길을 따라간 백성들도 심판한다.
열차로 예를 들면 장로는 앞에 있는 기관사요 선지자는 뒤에 있는 차장이다. 그 열차를 다른 방향으로 끌고 가면 그 열차에 탄 사람들은 그 방향으로 끌려가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차를 탈 때 어디로 가는 차인가를 바로 알아보고 타야 된다. 아무리 동쪽으로 가려고 결심하고 앉아 있어도 그 차가 서쪽으로 가면 자기도 서쪽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이 인도자가 잘못 인도하면 그 인도를 받는 사람도 잘못되어 그 인도자와 같이 잘못된 실을 가게 된다. 성경대로 바로 인도하는 인도자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그 인도자와 함께 복을 받는다.
• 9:17 이 백성이 각기 설만하며 악을 행하며 입으로 망령되이 말하니 그러므로 주께서 그 장정을 기뻐 아니하시며 그 고아와 과부를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시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설만하며 행동이 교만하고 무례함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교만 방자하여 망령된 말을 하였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장정도 기뻐하지 아니하고 고아와 과부도 긍휼히 여기지 아니하고 다 심판하신다는 것이다.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땅이 소멸됨 (18-21)
• 9:18 대저 악행은 불태우는 것 같으니 곧 질려와 형극을 삼키며 빽빽한 수풀을 살라서 연기로 위로 올라가게 함과 같은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은 불과 같고 악행은 나무와 같아서 악한 자를 불사른다(렘 5:14). 악행을 행하여 질려 나무와 가시나무와 같은 이스라엘을 하나님 말씀의 불로 태울 것이요, 빽빽한 수풀과 같은 그들을 여호와의 진노의 불로 살라서 연기로 올라가게 한다는 것이다. 숲이 아무리 무성해도 마른 다음에는 불이 순식간에 살라버린다. 행악자는 지려나 형극이나 마른풀과 같다(눅 23:31 참조).
• 9:19 만군의 여호와의 진노로 인하여 이 땅이 소화되리니 백성은 불에 타는 섶나무와 같을 것이라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이스라엘의 죄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셨으므로 백성들은 불타는 섶나무(잎나무)같이 순식간에 불타 없어질 것이다. 사람이 그 형제를 아끼지 아니하며 환난 날에는 형제를 돌아볼 여지가 없을 뿐 아니라 도리어 형제가 형제를 죽는 데 내어 준다(마 10:21).
• 9:20 우편으로 움킬지라도 주리고 좌편으로 먹을지라도 배부르지 못하여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여호와의 축복이 떠나면 우편 것을 움켜 먹고 좌편 것을 잡아먹어도 배부르지 못하고 만족함이 없다. 그 이유는 그 모든 것이 쇠잔해졌고 메말라서 영의 양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각각 자기 팔의 고기를 먹을 것이며 자기 백성들끼리 서로 싸우고 자기 살을 먹는다. 이것은 또 자기 팔과 같이 자기를 도와주던 자를 잡아먹는다는 것이다.
• 9:21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먹을 것이요 또 그들이 합하여 유다를 치리라 그럴지라도 여호와의 노가 쉬지 아니하며 그 손이 여전히 펴지리라
므낫세와 에브라임은 형제이다. 또 유다와 그들과 같은 형제이다. 그런데 에브라임은 므낫세를 잡아먹고, 므낫세는 에브라임을 잡아먹고, 또 그들이 합세하여 유다를 치는 것은 참으로 불상사이다. 자기 형제끼리 서로 물고 짖고 전쟁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징계 중의 하나이다. 그들이 믿음에서 떠났기 때문에 하나님의 징계가 임하게 된 것이다.
[느헤미야 8장 하나님 말씀] 에스라의 율법 강독(느 8: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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