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무엘상 3장 짧은 설교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삼상 3 : 1-9
사람에게 가장 큰 축복이라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동물과 다른 것이 이것입니다. 동물들은 울음소리로 꼬리를 흔들므로 행동을 보이면서 의사소통을 하지만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언어를 주셔서 자유롭게 사랑을 표현하고 자신의 희로애락을 표현하게 됩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말을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너무 답답했을 것입니다. 의사소통이 이루어지기가 힘이 들었고 문명의 발달도 늦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언어를 가지고 너무나 함부로 사용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을 미워하는데, 싸우는데, 시기하는데, 질투하는 데 사용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데 사용하시고 찬양하는데, 감사하는데, 용서하는 데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 사용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사람이 말을 한다는 것은 관계성입니다. 관계 속에서 대화를 하게 되고 마음을 열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입니다. 부부간에 사랑이 있을 때에 대화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사랑으로 대화가 열리기를 축원합니다.
따뜻한 말 한마디가 살인을 막고, 자살을 막습니다. 관심이 없으면 말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관심이 있을 때에 사람과 대화하게 되는 것입니다.
관계가 깊어지면 질수록 대화의 양도 많이 늘어납니다. 가령 여러분들이 길거리를 가다가 모르는 사람에게 말을 걸 때에 무슨 말을 하시겠습니까? 많이 물어보는 것이 모르는 길을 묻는 것입니다. 만약에 처음 보는 여자에게 차 한잔합시다.라고 말한다면 그 자리에서 따귀를 맞을지도 모릅니다. 관계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럼 여러분들은 예수님과 얼마나 관계성이 있습니까? 처음 보는 사람처럼 한마디의 대화를 하고 끝나는 그런 관계성입니까? 아니면 죽마고우처럼 어떤 말을 해도 이해하고 넘어가는 그런 사이입니까? 아니면 부부 사이처럼 살을 비비면서 사는 허물없는 그런 관계입니까?
우리는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믿음 생활을 한다고 하면서 관계성을 보면 형편없을 때가 있습니다. 만약 주님과의 관계성이 친밀감이 있으면 왜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합니까? 그리고 왜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습니까? 지금 여러분의 관계 회복이 필요할 때입니다. 주님과의 관계 회복 속에서 하나님이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믿음 생활은 오래되었는데 관계성이 회복이 되지 않아 항상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대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예수님과 아주 관계가 좋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럼 그 차이는 무엇입니까? 신앙의 연륜이 아닙니다. 마음의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여러분의 마음의 밭을 옥토 밭으로 만들면 예수님과의 관계도 회복되는 것입니다.
마 19:30 그러나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고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될 자가 많으니라
‘공부에는 왕도가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앙에도 왕도가 없는 것입니다. 열정을 다해 열심을 다해 최선을 다해서 하면 지금 왔건, 나중 왔건 그것은 예수님은 상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주님께 최선을 다하는 믿음의 선구자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여러분들이 세상을 살다 보면 세상에 말귀를 못 알아듣고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들을 직장이나, 사업장이나, 사람들이 사는 곳에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이럴 때에 얼마나 답답함이 있습니까? 혹시 당신이 그 주인공은 아닙니까?
만약 그렇다면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의 고집을 꺾고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에게서 사람들이 떠난다. 나만 나타나면 사람들이 슬금슬금 사라진다. 절대 말하려들지 않는다. 이런 종류의 현상이 나타나면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이 시대에 대화하고 싶은 사람들을 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실 말씀을 전해줄 사람 그런 사람이 필요하신 것입니다. 하나님도 고민이 있습니다. 그 고민을 들어줄 사람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민이 있을 때에 누구에게 하소연합니까? 들어줄 사람이 있다면 당신들은 성공한 사람입니다. 어떤 고등학생이 집안 형편이 어려워 고민이 생기고 학교 성적이 떨어져 낙심되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어서 고민하다 결국 아파트에서 떨어져 자살했다고 합니다. 이 시대는 고민이 있어도 들어줄 사람이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가정에서 대화가 단절되었고 사회는 각자 바빠서 들어줄 시간들이 없고 이런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주님께 얼마나 하소연합니까? 이것이 감사가 아닙니까? 그런데 이제는 하나님은 우리의 하소연을 들어주시고 응답은 해주시는데, 이제 우리는 하나님의 하소연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아니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말씀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제 당신이 하나님의 하소연을 들어주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까?
오늘 본문의 말씀에 사무엘이 나옵니다. 사무엘은 한나의 서원기도로 하나님께서 주신 그런 사람입니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엘리 제사장의 밑에서 제사장 교육을 받고 있는 그런 인물입니다.
삼상 3:1 아이 사무엘이 엘리 앞에서 여호와를 섬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이 시대는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고 싶어도 들어줄 만한 사람이 없던 시대입니다. 한마디고 영적으로 열린 사람이 없었던 시대입니다. 모두 육적으로 타락한 인생들이기에 성령의 거룩한 영이 임하고 싶어도 임할 수 없는 그런 시대적 환경이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거룩해야 합니다.
고전 6:17-20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 하는 자는 자기 몸에게 죄를 범하느니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육신이 경건하게 되면 영혼도 거룩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의 몸을 더럽히고 음행하고 술 취하고 방탕한 삶을 살면 성령의 임재 함이 없고 하나님의 음성도 들을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경건한 인생을 살 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항상 하나님께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가는 곳마다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니까 소돔과 고모라성을 심판할 때에 내가 너에게 무엇을 감추겠느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엡 5:18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는 영적인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한국어가 아닌 다른 말로 설교를 한다면 알아들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육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영으로 말씀을 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영적인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시 42:1-3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생존하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 사람들이 종일 나더러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영적인 준비는 목마름입니다. 성령을 찾기에 갈급하십시오. 목말라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교회 부흥도 목말라하는 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사업의 번창도 목말라하십시오. 영적인 갈급함 속에 채워지는 것입니다. 내가 뱃속에 음식으로 채워져 있으면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 앞에 있어도 맛없이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배고픔이 있으면 어떠한 음식도 감사하며 먹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갈급하여 보세요. 음성을 사모하여 보세요. 반드시 들려주십니다. 알려주십니다. 우리는 지금 믿음 생활하면서 배고파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교만이 우리에게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판단하려고 하고 영적인 것에 대해서 눈이 열리지 못했으면서 영적인 현상들을 판단하고 이것은 소경이 보지도 못하면서 눈을 뜨고 있는 사람에게 지시하는 격입니다. 해외에 가보지도 못한 사람이 갔다 온 사람의 말만 듣고 갔다 온 사람이 말하면 아니라고 틀리다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통로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어떠한 상황으로도 말씀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계속적으로 사무엘을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목적 없이 부르시지 않습니다. 부르실 목적이 있기에 부르시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알아듣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수준에 따라 말씀하시는데 그것을 빨리 깨달아야 합니다.
1. 꿈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요셉에게 꿈을 주어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창 37:6-7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청컨대 나의 꾼 꿈을 들으시오 우리가 밭에서 곡식을 묶더니 내 단은 일어서고 당신들의 단은 내 단을 둘러서서 절하더이다
하나님께서 꿈으로 요셉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하나님께서 영몽을 꾸게 하실 때가 있습니다. 그 꿈은 보통 꿈과는 다릅니다. 아주 선명하게 꾸고 기억에 오래 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주신 음성인 것입니다. 그리고 꿈만 꾸고 끝나면 안 됩니다. 그 꿈에 희망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뭐 이런 꿈을 꾸었지 하고 끝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저도 3년 전에 새벽기도를 마치고 잠시 잠이 들었을 때에 영몽을 꾸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50미터나 되는 구렁이가 빠져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것은 사탄의 세력을 몰아내 주신 것입니다.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이 됩니다.
2. 환상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행 9:10-11그 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가라사대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주께서 가라사대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 집에서 다소 사람 사울이라 하는 자를 찾으라 저가 기도하는 중이다
행 11:5 가로되 내가 욥바성에서 기도할 때에 비몽사몽간에 환상을 보니 큰 보자기 같은 그릇을 네 귀를 매어 하늘로부터 내리워 내 앞에까지 드리우거늘
3. 이상으로 말씀하십니다.
단 7:1-2 바벨론 왕 벨사살 원년에 다니엘이 그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 속으로 이상을 받고 그 꿈을 기록하며 그 일의 대략을 진술하니라 다니엘이 진술하여 가로되 내가 밤에 이상을 보았는데 하늘의 네 바람이 큰 바다로 몰려 불더니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놀라운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모두 성령을 간구했을 때에 일어나는 현상들입니다. 하나님은 필요에 따라서 말씀하시고 음성을 주십니다. 아니 이 현상들보다 더한 일도 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만약에 어느 날 은행에서 광고를 했습니다. 며칠 날에 은행에 금고를 개방하겠으니 조건 없이 돈을 가져가시오. 그럼 여러분들은 주머니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 것으로 준비하시겠습니까? 준비된 만큼 담아올 수 있는 것입니다.
영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이 마음의 그릇을 준비하는 만큼 하나님은 조건 없이 은혜를 부어주시는 것입니다. 영적인 현상들도 같습니다. 마음을 열고 성령을 갈망하고 주님께 나오면 사도행전에 임했던 성령님이 지금 이 시간에 함께 하셔서 여러분들을 바꾸실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꿈과 환상과 이상으로 말씀하시고 아니 그보다 더한 역사가 일어나리라. 생각됩니다. 저는 우리 교회가 성령의 역사가 나타나 성도 모두가 성령의 체험을 하고 믿음 생활하기를 기도합니다. 자신이 응답받으면 믿음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기적적인 체험을 하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가정과 사업과 교회와 직장에 성령의 강한 바람이 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출애굽기 12장 설교말씀] 쓴 나물의 유익(출 12:5-10) (0) | 2020.10.15 |
---|---|
[출애굽기 20장 설교말씀] 유일하신 여호와(출 20:1-2) (0) | 2020.10.15 |
[성경 십계명] 하나님의 법 율법(출 20:1-17) (0) | 2020.10.15 |
[새벽 예배 10분 설교문] “머리가 되는 축복”(신 28 : 13-14) (0) | 2020.10.14 |
[구약성경 지명 짧은 설교] 디셉 Tishbe (0) | 2020.10.13 |
[역대하 31장 짧은 설교] “십일조의 축복”(대하 31 : 1-10) (0) | 2020.10.12 |
[새벽 예배 10분 설교문] “기적을 체험하는 신앙”(삿 6 : 36-40) (0) | 2020.10.12 |
[새벽 예배 설교] “성령의 권능을 받는 한해가 됩시다”(욜 2 : 28-32) (0) | 2020.1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