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오늘은 사도행전 6장 헬라어 강해 중에서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선출이라는 성경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열두 제자들은 교회가 부흥하면서 모든 것을 관리할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기 위해서 교회를 섬길 일곱 집사를 선출하게 됩니다. 집사의 선택을 통해서 초대 교회가 더 부흥하는데 기초가 됩니다. 집사를 선택하는데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사람을 선택하게 됩니다.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 자를 뽑게 됩니다. 교회의 집사들은 하나님 앞과 사람들 앞에서 칭찬받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신앙과 믿음과 성품이 잘 갖추어진 사람을 선택하여 교회의 집사로 세워야 합니다. 신앙과 성품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면 교회의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교회 성장을 위해서 일곱 집사를 선택하여 세웠듯이 집사로 피택 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교회를 위해서 헌신 봉사하는 직분이라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초대 교회 일곱 집사 선출(행 6:1-7)
1절 엔 데 타이스 헤메라이스 타우타이스 플레뒤논톤 톤 마데톤 에게네토 공귀스모스 톤 헬레니스톤 프로스 투스 헤브라이우스 호티 파레데오룬토 엔 테 디아코니아 테 카데메리네 하이 케라이 아우톤
행 6:1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매일의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하니
=====6:1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 '제자'의 헬라어 '마데테스'는 본서에서 처음 언급되고 있다. 이 단어는 공관복음서에서 160회, 요한복음서에서 78회, 본서에서 28회 사용되고 있는데 예수의 12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고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람들까지 지칭한다.(14:21; 요 8:31). 전장에서 유다인들의 탄압에 대한 가말리엘의 변호(5:34-39)와, 채찍에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증거 한 사도들의 담대한 전도는 제자들의 수를 급증시켰다.
렌스키(Lenski)에 따르면 이때의 신자의 수는 약 20,000-25,000명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불과 1,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정도로 증가되었다는 것은 가히 폭발적이라 할 수 있다.
헬라파 유대인...히브리파 사람 - '히브리파 사람'이란 이스라엘 땅에서 출생, 성장한 유대인들을 가리키며, '헬라파 유대인'이란 각처에서 흩어져 살다가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온 디아스포라(Diaspora) 출신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전자는 약간의 헬라어(Greek)를 알고 있으면서 셈어(Semitic language)를 주로 사용했다. 당시 거의 모든 유대인들은 적어도 약간의 헬라어는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당시 헬라어는 지중해 동쪽 지방의 국제 통용어(lingua franca)였기 때문이다. 이 히브리어라기보다는 오히려 아람어(Aramaic)였다고 봄이 더 정확하다. 반면 후자는 아람어를 전혀 모르거나 약간 알고 있으면서 주로 헬라어를 사용했다. 이들은 유대인으로서 그들의 상용어(常用語)인 헬라어로 예배드리는 경향이 있었으며, 이러한 습관은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도 지속되었다. 이들은 히브리파 사람들보다는 혼합주의적 영향력에 더 개방적이었다. 그러나 히브리파 사람들은 헬라파 사람들보다 선민적(選民的) 배타 의식이 더 강했다.
구제에 빠지므로...원망한대 - 당시 유대교 내의 빈민 구제 사업에는 두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일정한 지역 내의 거주민들 중 극빈한 사람들에게 매주 금요일마다 열네 끼에 해당하는 돈을 지급하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방랑하는 낯선 빈민들에게 사발에다 음식을 나누어 주는 일이었다. 그런데 본문에 나오는 기독교 공동체의 구제 방식은 위의 두 가지와는 또 다른 것이다.
왜냐하면 구제 대상이 공동체 내의 지역민들인 동시에 구제 시기는 또 매일이기 때문이다. 이들이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 구제를 받은 사실은 이미 유대교 사회로부터 소외당했음을 시사한다(Haenchen). 한편 헬라파 유대인들이 원망하게 된 구체적인 동기가 무엇인지는 본문에 나와 있지 않다. 그들은 매일매일의 식량 배급이나 생필품 지급에서 헬라파 과부들이 히브리파 과부들보다 푸대접을 받거나 더러는 누락이 되어 불만을 표했던 것 같다. 따라서 이들의 원성이 교회 안에서 높아감에 따라 사도들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중재에 나서게 되었다(2절). 더욱이 헬라파와 히브리파 유대인들의 상용어가 서로 간에 달랐으므로 자연히 따로 모이는 경우가 많았을 것이며 이런 와중에서 서로는 편견과 불평들을 토로했을 것이다.
2절 프로스칼레사메노이 데 호이 도데카 토 플레도스 톤 마데톤 에이폰 우크 아레스톤 에스틴 헤마스 카탈레입산타스 톤 로곤 투 데우 디아코네인 트라페자이스
행 6:2 열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
=====6:2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 당시 사도들은 교회의 중심인물로서 기독교 공동체를 지도하고 감독했었다. 이들은 교회 안에 문제가 생겼을 때는 임의대로 처리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의 회의를 소집(召集)하였고 그 회의에서 논의된 결과에 따라 그 문제를 처리하였다. 이 회의가 굳이 예수의 수석 제자인 베드로에 의해서 주재되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또 반드시 남자들로만 구성되거나 연령 제한이 있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다. 이 회의는 사도들 독단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 사도들은 단지 문제 해결을 위한 방안을 제시했을 뿐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 예수께서 열 두 사도에게 분부한 우선적인 사명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그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것이었다(마 28:19, 20). 그런데 교회 내에 구제 사업을 비롯한 행정적 일들이 날로 늘어감에 따라 사도들은 정작 주력해야 할 복음 증거 사역에 자연히 소홀해질 수밖에 없게 되었다. 따라서 사도들은 그들이 맡은 사명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교회 안의 행정 처리와 말씀 전하는 일을 이원화시킬 것을 제안한다.
공궤를 일삼는 것 - '일삼는'의 헬라어 '디아코네인'은 전치사 '디아'와 '먼지'를 뜻하는 '코니스'의 합성어로서 '먼지가 일어날 만큼 분주히 움직이다', '열심히 일하다', '봉사하다'는 뜻이다. 이 단어는 신약 성경에서 '식사나 기타의 일 등에서 섬기는 것'(요 12:26)을 나타낼 때와 '집사로서 봉사하는 것'을 나타낼 때 사용되었다(딤전 3:10, 13).
영어의 집사에 해당하는 단어 deacon은 이 단어에서 유래되었다. 그리고 1절의 '구제'(디아코니아)라는 말도 본 단어와 동일한 어원에서 유래되어 집사들이 교회 안에서 주로 맡은 일들이 무엇인가를 시사한다(6:1-7). 또 '공궤'의 헬라어 '트라페자이스'는 '식탁'이나 '환전상의 탁자'를 의미하는데 '디아코네인 트라페자이스'는 함께 결합하여 특별히 교회 안의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며 식량과 생활용품 등을 나누어 주는 등의 구제 사업을 가리킨다.
여기서 사도들이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다' 하였다고 해서 '공궤'가 기도하는 일과 가르치는 일보다 저급(低級)한 일이라고 단정해 버려서는 안 된다. 이는 다만 열 두 사도에게 있어 '공궤' 하는 일은 그들이 주께로부터 부름 받은 일(마 28:19, 20) 보다 우선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교회 안의 각 구성원은 저마다 주께로부터 특별히 부름 받은 사명이 있는 것이다.
3절 에피스켑사스데 운 아델포이 안드라스 엑스 휘몬 마르튀루메누스 헤프타 플레레이스 프뉴마토스 하기우 카이 소피아스 후스 카타스테소멘 에피 테스 크레이아스 타우테스
행 6:3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받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그들에게 맡기고
=====6:3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 집사 일을 맡아볼 사람들의 자격으로서 제일 먼저 거론된 것은 '성령의 충만함'이다. 왜냐하면 성령은 복음 전파와 교회 확장의 주요 동인(動因)이었기 때문이다(5:32; 8:39; 10:19, 38, 44; 11:12, 24; 16:6). 따라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은 성령께서 부여하신 은사와 함께 자신의 재능을 온전히 바쳐 하나님의 일을 올바로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지혜의 충만함'은 성령 충만에 부수적으로 따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지혜의 충만함은 곧 성령 충만의 증거도 되기 때문이다.
이 지혜는 행정 및 사무 처리에 필요한 지혜를 뜻할 수도 있겠으나 보다 포괄적으로는 생활에 필요한 실천적인 지혜들까지 포함한다. 여기서 '칭찬 듣는 사람'에 해당하는 헬라어의 문자적인 의미는 '평판이 좋은 사람', '증명된 사람'이다. 즉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일을 맡을 사람은 성령 충만한 결과로 나타나는 신앙 인격 또한 타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사람들을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분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다. 한편 사도들이 일곱 집사를 선택하는 본문의 과정은 구약 성경에서 모세가 이스라엘 회중 가운데서 여호수아를 택하여 세우는 과정과 평행이 된다(민 27:16-20).
일곱을 택하라 - 집사의 수효를 굳이 일곱으로 정한 것에 대해서는 다양한 견해가 제시되나 다음 세 가지가 비교적 타당성을 지닌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 유대인들에게 있어 7이라는 수는 성수(聖數) 또는 완전수로 여겨졌으므로 그들이 임의로 특정한 수를 택해야 할 경우에는 대개 7을 택하였다. 그래서 본문의 경우에도 그들의 생활 관례에 따라 7명의 집사를 선택했을 것이다(Lenski, Pulpit Commentary). (2) 유대의 관습상 특별한 문제가 발생했을 때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7인 위원회가 구성되었는데 당시 예루살렘 교회는 이런 관습을 좇은 것 같다(Marshall).
(3) 유대 공동체는 일반적으로 지역 책임자들이 7명으로 구성되었는데 그때 예루살렘 교회는 이러한 유대의 제도를 따른 것 같다(Haenchen). 어떠한 견해를 따르든 본 구절을 해석하는 데는 별 무리가 없으며 그 문제 자체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아니다. 당시 상황으로는 7명 정도면 구제 사업을 담당하며 교회 내의 사무 및 행정적인 문제를 처리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이러한 사례를 본받아 어떤 교회에서는 항상 일곱 집사만을 선택하여 세우려 하지만 이는 본문을 잘못 해석하여 적용한 경우이다. 왜냐하면 초대 교회에서 집사 수를 일곱으로 고정시켜 제도화한 것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은 몸 된 교회를 위한 일꾼으로 또 사도들의 동역자(同役者)로 선출된 사람들이지 사도들의 보조자나 종 또는 심부름꾼으로 선출된 사람들이 아니다.
4절 헤메이스 데 테 프로슈케 카이 테 디아코니아 투 로구 프로스카르테레소멘
행 6:4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일과 말씀 사역에 힘쓰리라 하니
=====6:4
기도하는 것과 말씀을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 여기서 평신도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의 기본적인 사역의 방향이 제시된다. 평신도 지도자들이 교회 안의 사무 행정 등의 문제를 담당한다면 목회자들은 기도와 말씀 전하는 일에 전무해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말씀 전하는 사명을 특별히 부여하심(막 16:15)과 함께 늘 기도할 것을 말씀하셨고 기도의 모형을 제시하시며 기도를 가르치셨다(마 6:9).
여기서 '기도'의 헬라어 '프로슈케'는 때때로 기도라는 의미 외에 '기도회' 같은 기독교 공동체의 '공동 예배'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여기서 이 같은 의미로 사용됐는지는 모르지만, 사도들이 기도에 열심을 다하는 모습이 성도들에게 비쳤다면 당연히 성도들도 기도에 열심을 내었을 것이고 이로 인하여 기도회(祈禱會) 같은 모임이 자주 형성되었을 것이다.
5절 카이 에레센 호 로고스 에노피온 판토스 투 플레두스 카이 엑셀렉산토 스테파논 안드라 플레레 피스테오스 카이 프뉴마토스 하기우 카이 필리프폰 카이 프로코론 카이 니카노라 카이 티모나 카이 파르메난 카이 니콜라온 프로셀뤼톤 안티오케아
행 6:5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했던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6:5
스데반...니골라 - 본 절에서 제시된 일곱 사람의 이름은 모두 헬라명이다. 이 사실만 가지고 이들이 모두 헬라파 유대인들이었다고 단정하기에는 어려움이 있다. 왜냐하면 당시 팔레스틴 내에도 헬라식 이름을 가진 유대인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자 누가가 여기서 헬라식 이름만을 기재한 사실과 이들을 뽑게 된 직접적인 배경이 헬라파 유대인들의 불평이었다는 점 등을 본다면 이들은 모두 헬라파 유대인 들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스데반과 빌립'이 첫 번째 언급된 것은 뒤이어 이어지는 이야기에서 그 중요성이 부각되기 때문인 것으로 추측된다. 즉 스데반과 빌립은 사도들처럼 훌륭한 사역을 감당한 전도자들이다. 한편 본 구절의 '빌립'은 예수의 제자 빌립과는 다른 인물이다(8:5; 21:8).
안디옥 사람 니골라 - 이레니우스와 터툴리안은 본 구절의 '니골라'가 계 2:6-15의 '니골라당'을 세운 사람과 이름이 같다 하여 양자를 동일 인물로 보아 본 구절의 니골라를 배교자로서 간주한다. 그리고 어떤 학자들은 일곱 사람들 중 유독 니골라에게만 특별히 상세한 소개를 첨부한 사실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본다(Gieseler, de Wette, Ewald). 그러나 그 같은 사실을 입증할 만한 증거나 자료가 발견되지 않고 있다.
6절 후스 에스테산 에노피온 톤 아포스톨론 카이 프로슈크사메노이 에페데칸 아우토이스 타스 케이라스
행 6:6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
=====6:6
안수하니라 - 여기서 사도들이 일곱 집사에게 안수하고 그들에게 책임을 부여한 것은 민 27:15-23에서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안수를 함으로써 여호수아를 자신의 후계자로서 지명한 이야기와 평행하는 것 같다.
7절 카이 호 로고스 투 데우 에욱사넨 카이 에플레뒤네토 호 아리드모스 톤 마데톤 엔 히에루살렘 스포드라 폴뤼스 테 오클로스 톤 히에레온 휘페쿠온 테 피스테이
행 6:7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
=====6:7
왕성하여...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 '왕성하여'의 헬라어 '에욱사넨'은 '자라게 하다', '증가하게 하다'는 뜻인 '아욱사노'의 미완료 과거 능동태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예루살렘 교회를 질적으로 계속 자라게 하시며 또 양적으로도 믿는 자의 수를 지속적으로 증가하게 하셨다는 의미이다.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의 한 예로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실이 언급되는데 이는 예루살렘 교회의 성장의 한 예로 많은 제사장의 무리가 그리스도인들이 된 사실이 언급되는데 이는 예루살렘 성 내에서 대단히 충격적인 일이었으며 유대교 내에서는 치욕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조차 했을 것이다.
예레미야스(Jeremias)에 따르면 예수 당시의 유대인 일반 제사장들과 레위인들은 모두 18,000명가량이었고 이중 8,000명 정도가 제사장들이었다고 한다. 이 제사장들 이 제의(祭儀) 기능을 수행했던 기간은 3대 명절의 순례 축제 기간과 연 2주간 정도였으며 나머지 연 10-11개월 동안은 고정된 수입이 없었던 관계로 생계의 어려움 때문에 많은 사람이 직업을 가졌다고 한다.
그리고 이들과 대제사장들 사이의 사회적인 신분 격차는 대단히 컸으며 대제사장들은 항상 제사장들의 소득의 십 분의 일을 떼곤 하였으므로 이로 인해 별다른 소득이 없는 제사장들은 굶어 죽는 사례도 있었다고 한다. 이는 당시 제사장들의 생활이 얼마나 어려웠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따라서 당신의 제사장들은 자신들의 어려운 생활과 또한 유대교 자체의 부패상으로 인해서 많은 회의(懷疑)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그들에게는 생명력 있는 기독교 신앙이 많은 호감을 불러일으켰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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