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창세기 11장 성경주석강해] 인간의 반역 바벨탑 사건(창 11:1-32)

두란노 서원 2024. 3. 12.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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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1장 성경주석강해 인간의 반역 바벨탑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흩어져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고 뭉쳤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흩어버리게 했습니다.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했습니다.

 

인간의 반역 바벨탑 사건(창 11:1-32)

 

I. 사람들의 오만 불손한 계획 11:1-4

10장의 마지막 부분은 다음의 사실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홍수 후에' 노아의 자손들에 '의해서' 혹은 자손들 '사이에' '땅의 열국 배경이 나뉘었다.' 즉 그들이 여러 부족으로 나뉘었다는 말이다. 그리고 여러 지파 혹은 집단이 어떤 경로를 거쳐 나아가느냐 하는 문제는 노아가 지시를 했거나 아니면 그 아들들끼리 서로 합의를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자손들은 먼 곳으로 뿔뿔이 흩어지는 것을 싫어했던 것 같다. 그들은 함께 모여 북적댈수록 더 안전하다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이나 노아보다도 더 현명하다고 생각하고 함께 모여 있을 궁리를 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 몇 가지 점을 보게 된다.

1. 함께 모여 살려는 그들의 계획을 유리하게 했던 이점들(1,2)

(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1). 곧 그들의 언어가 하나이었다. 사실 그들 모두가 서로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었을 동안에는 서로를 더욱 사랑하고 도울 수 있었으며 서로 헤어지기를 싫어하였을 것이다.

(2) 그들은 '시날 평지'가 그들의 거처로 정하기에 매우 유리하고 널찍한 장소인 것을 발견하였다(2). 그 평지는 그들 모두를 '수용할'수 있을 만큼 널찍하고, 당시 그들의 숫자를 모두 먹여 살릴 수 있을 만큼 '비옥한' 땅이었다.

2. 그들이 서로 결속하여 한 집단으로 거처하기 위하여 취한 방법(3,4)

그들은 하나님의 보호 아래 평화롭게 떠남으로써 자기들의 경계를 넓히고자 하기보다는 자기들의 요새를 구축할 생각을 품었다. 그들이 만장 일치로 가결한 내용은 이것이었다. , 성과 대를 쌓아(4).

(1) 그들은 이 일을 착수하기 위해 서로를 격려하고 권고하였다. 그들은 '자 벽돌을 만들자'(3)고 말하였고 또 '성을 쌓자'(4)고 말하였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함으로써 서로에게 용기를 북돋우고 결의를 굳게 하였다.

(2) 그들이 성과 대를 쌓는 데 사용한 재료 : 그 땅은 평지였기 때문에 돌로 회반죽도 나지 않았다. 그럴지라도 이 사실 때문에 그들이 낙망하여 그 일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회반죽 대신에 진흙이나 역청을 사용하였다. 결심이 굳은 사람들은 어떤 수단을 써서든지 자신의 목적을 이룰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선한 일에 그와 같은 열심을 가졌다면 우리가 흔히 그러듯이 그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여러 모로 형편이 마땅치 않는다 핑계 아래 우리의 일을 중단하지는 않을 것이다.

(3) 그들은 세 가지 목적을 위해 이 성과 대를 쌓았던 것 같다.

1)이 일은 하나님을 모독하기 위해 계획되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이 대를 쌓되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게'까지 쌓으려고 하였는데 명백히 그것은 하나님께 도전하거나 아니면 적어도 그와 경쟁하려는 태도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2)그들은 그 일로 인해서 자신들의 이름이 알려지기를 원했고 세상에 자기들과 같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후손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그들은 그들의 자만심과 야망과 어리석음의 기념물을 남기고 싶어했다. 그러나 우리는 어떤 역사의 기록에서도 이 바벨탑 건설자들 중에 한 사람의 이름조차 발견하지 못한다.

3)그들은 서로 흩어지는 것을 면하기 위해 이 일을 하였다. 아마도 야심적인 니므롯이 이 모든 일에 관여했을 듯싶다. 그는 세계적인 군주 정치를 꾀했다. 그래서 그 일을 이루기 위해 그는 공동의 안전을 위해 연합한다는 구실 아래 그들을 한 집단으로 묶어 그의 감시 아래 두고, 그렇게 하여 그들을 지배할 수 있는 권력을 장악하려고 궁리하였다. 우주적인 군주가 되는 것, 곧 만민의 주요, 왕 중의 왕이 되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속한 대권이다. 그러므로 그 일을 꾀하는 자는 자기의 영광을 결코 다른 이에게 주시지 않는 하나님의 보좌를 빼앗으려고 도전하는 자인 것이다.

. 그들에게 내려진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 11:5-9

우리는 여기서 하나님이 바벨탑을 쌓는 자들의 계획을 파기시키시는 것을 보게 된다.

1. 땅에서 벌어지고 있는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심리(5,6)

하나님은 죄와 죄인들에 대해 시행하시는 그의 모든 소송 절차에 있어서 두말할 나위 없이 공정하시다. 그들은 '아담'의 자손들이었다. 히브리어로는 그렇게 되어 있다. 자손이되 불순종하여 죄지은 아담의 자손들이다. 따라서 그들은 본성적으로 불순종의 자녀들인 것이다. 경건한 에벨은 이 불경스러운 무리들 가운데에 서지 않았다. 이는 그와 그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자녀들로 불리고 있다는 사실에서 증명된다.

2. 이 문제에 관한 영원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결의(7-9)

(1) 하나님은 그 일을 중단시키기 전에 그들이 그 일을 그만두고 좋은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그들을 참고 기다리셨다. 이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할 여지를 얻게 하려 하셨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은 명령과 훈계로써 그들을 이 일에서 돌이키게 하시려고 애쓰셨으나 허사였다. 따라서 하나님은 세상의 질서를 바로잡고 법의 저지를 받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의 손을 묶기 위해서 부득이 또 다른 방침을 세우시지 않으면 안 되었다. 사실 우리는 하나님이 그들의 범죄에 해당하는 형벌을 내리시지 않고 오히려 완화하셨다는 사실에서 하나님의 자비를 보게 된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를 우리의 죄대로 갚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 이제 천둥과 번개를 가지고 내려가서 반역하는 무리들을 단숨에 살라 버리자"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렇게 하시지 않고 단지 "내려가서 그들을 흩어 버리자"고만 말씀하신다. 그들은 죽어야 마땅했으나 다만 추방되었을 뿐이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인내가 그를 격노케 하는 세상에 대하여 매우 크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개입하심으로 세 가지 일이 벌어졌다.

1)그들의 언어가 혼잡하여졌다. 말로써 다투거나 서로의 말에 대한 오해로 야기되는 논쟁들은 이러한 언어의 혼합 때문일 경우가 많다.

2)그들의 건축하는 일이 중단되었다.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8). 이것은 그들의 언어가 혼합하여짐으로 생긴 결과였다. 왜냐하면 언어의 혼잡은 그들이 서로를 도울 수 없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여호와의 손이 그들을 치신다는 사실을 알게 함으로써 그들의 사기를 꺾어 계속해서 일을 해나갈 수 없도록 만들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대적하여 싸우는 일이라고 생각되는 일은 그만두는 것이 지혜이다.

3)성과 대를 쌓던 자들이 온 지면에 흩어졌다(8,9). 그들은 각각 종족과 방언을 따라 각자에게 배당된 지역과 장소로 떼를 지어 떠나갔다(10:5,20,31). 그들은 그 곳에 붙여진 이름을 통하여 그들의 영원한 수치의 기억을 뒤에다 남겨 놓았다. 그곳은 '바벨' '혼잡'이라고 불려졌다. 위대한 명성을 가지려고 꾀하는 자들은 대개가 '악한'이름으로 끝나고 만다. 결국 사람의 자손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그리하여 또다시 그들이 하나로 모인 적이 없었으며 또한 마지막 날, 곧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서 모든 민족을 그 앞에서 모으시는 날까지는 결코 한데 모이지 않을 것이다(25:31,32).

. 셈의 계보 11:10-26

우리는 여기서 하나의 계보를 보게 되는데 그것은 끝없이 이어지는 계보가 아니다. 왜냐하면 여기에서 그 계보는 하나님의 벗인 아브람으로 끝나며 더 나아간다 해도 그것은 언약의 씨 곧 아브라함의 자손인 그리스도로서 종결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상 그리스도의 계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다(1:1). 여기서 다음 몇 가지 점을 생각해 보자.

(1) 이 계보의 사람들에 관해서는 그들의 이름과 연수 외에는 아무것도 더 기록되지 않았다. 성령께서는 속히 그들을 거쳐 아브람의 이야기로 옮겨가시고자 하셨던 것 같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다가 우리 앞서 간 사람들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지 못하는가! 심지어 우리가 살고 있는 동일한 장소에서 살던 사람들에 관해서 조차도 우리는 얼마나 모르는가! 마찬가지로 우리는 현재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는 우리의 동시대인들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시대의 일에 신경을 쓰는 것이 고작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지나간 것을 다시 찾으신다'(3:15).

(2) 그들의 연수가 점차적으로 현저하게 줄어들었다. 셈은 육백 세까지 살았다. 그러나 그 나이도 홍수 전에 살던 족장들의 연수에 비하면 짧았다. 그 다음 세 사람은 그 연수가 오백 세에 미치지 못하였고, 그 다음 세 사람은 삼백 세에 미치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들 이후의 사람들 중 데라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그 연수가 이백 세에 달한 사람은 없었다. 그 이후로 사람들은 보다 적은 연수를 살았다. 그래서 모세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리는 연수를 칠십이나 팔십으로 헤아렸다.

(3) 그로 인해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이 생겨 난 에벨은 홍수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 중에는 가장 오래 산 사람이었다. 아마도 그의 장수는 그의 뛰어난 신앙과 하나님의 길을 엄격히 고수함에 대한 보상이었을 것이다.

. 아브람에 관하여 11:27-32

여기서부터는 아브람의 기사가 시작되는데 이후로 그의 이름은 신구약 전체를 통해서 유명해진다.

1. 그의 고향, 갈대아 우르(27,28)

이곳은 아브람이 태어난 땅이며 우상 숭배가 가득한 지방이었다. 그리하여 이곳에서는 에벨의 자손들조차 타락하였다. 여기서 우리는 다음의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은혜로 말미암아 약속의 땅을 물려받을 자들은 마땅히 자기들이 어디에서 태어났고, 본래 자기들의 부패하고 죄스런 상태가 어떤 것이었으며, 자기들이 떨어져 나온 원래의 바위가 어떠한 것이었는가를 기억해야 한다.

2. 그의 친족들(27-30)

이들은 아브람을 인하여, 그리고 다음 이야기에 그들이 관계되어 있기 때문에 언급되었다.

(1) 그의 아버지는 '데라'였다. 그에 대해서 성경은 그가 강 저편에 거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다고 말한다(24:2). 우상 숭배는 그처럼 일찍부터 세상에 뿌리박고 있었다. 그러므로 선한 윤리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그 같은 시대의 조류를 거슬러 가기란 매우 어려운 일인 것이다.

(2) 여기에는 그의 형제들에 관한 기사가 있다.

1)나홀 : 이삭이나 야곱 모두가 그의 가정에서 자기 아내들을 취했다.

2)하란 : 그는 롯의 아비로서 '아비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28). 자녀들이라고 해서 자기 부모들보다 더 오래 살 것이라는 보장은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죽음이 반드시 연상을 따져서 나이 든 자를 먼저 데려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죽음의 그늘에는 아무 구별이 없는' (10:22) 법이다. 그가 그 아비 데라보다 먼저 죽었다는 말은 그의 가족이 우상 숭배감 가득한 나라에서 빠져나오는 복스런 이동이 있기 전 '갈대아 우르에서' 죽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3) 그의 아내는 '사래'였다. 어떤 사람들은 그녀가 하란의 딸 이스가와 동일인이었다고 생각한다. 아브람 자신은 그녀가 그의 이복 누이라고 했다(20:12). 그녀는 아브람보다 열 살 아래였다.

3. 갈대아 우르에서의 출발(31,32)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그의 아비 데라, 조카 롯 그리고 나머지 가족들과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났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해서는 다음 장(12:1)에서 더 잘 알게 될 것이다. 이 장은 그들이 우르와 가나안의 중간쯤인 하란 혹은 카란(charran)이라는 곳에 머무르는 것으로 끝난다. 그들은 거기에서 데라의 머리가 뉘어질 때까지 머물렀다. 그 이유는 아마도 그 노인이 노쇠에 따른 여러 가지 질병으로 인해 여행을 계속해 나아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란에 까지는 이르나 가나안까지는 도달하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멀리 있지는 않으나 결코 거기에 이르지는 못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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