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란노 서원 구약 강해

[룻기 1장 하나님 말씀] 전과 다르게 사는 법(룻 1:6-14)

두란노 서원 2020. 11. 21.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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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오늘은 룻기 1장 하나님 말씀 중에서 전과 다르게 사는 법이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우리가 전과 다르게 산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베들레헴에 기근이 오자 모든 재산을 정리하고 모압으로 떠났습니다. 결국 모압에서 고통을 당하게 됩니다. 우리도 주님이 싫다고 세상으로 가면 나오미처럼 고통스러운 살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이제 복음의 말씀을 따라 다시 베들레헴과 같은 교회로 돌아와야 합니다.

 

전과 다르게 사는 법(룻 1:6-14)

 

룻1:6 그 여인이 모압 지방에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시사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 함을 듣고 이에 두 며느리와 함께 일어나 모압 지방에서 돌아오려 하여 

룻1:7 있던 곳에서 나오고 두 며느리도 그와 함께 하여 유다 땅으로 돌아오려고 길을 가다가 

룻1:8 나오미가 두 며느리에게 이르되 너희는 각기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너희가 죽은 자들과 나를 선대한 것 같이 여호와께서 너희를 선대하시기를 원하며 

룻1:9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허락하사 각기 남편의 집에서 위로를 받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고 그들에게 입 맞추매 그들이 소리를 높여 울며 

룻1:10 나오미에게 이르되 아니니이다 우리는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의 백성에게로 돌아가겠나이다 하는지라 

룻1:11 나오미가 이르되 내 딸들아 돌아가라 너희가 어찌 나와 함께 가려느냐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룻1:12 내 딸들아 되돌아가라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내가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든지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룻1:13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으며 어찌 남편 없이 지내겠다고 결심하겠느냐 내 딸들아 그렇지 아니하니라 여호와의 손이 나를 치셨으므로 나는 너희로 말미암아 더욱 마음이 아프도다 하매 

룻1:14 그들이 소리를 높여 다시 울더니 오르바는 그의 시어머니에게 입 맞추되 룻은 그를 붙좇았더라 

여기에서 '전과 다르게 하는 법'이라는 말은 '전과 다르게 사는 법'이라는 말을 뜻하고 있습니다. 전과 다르게 사는 법은 중요합니다. 시 말하면 과거와 다르게 세상을 사는 깨우침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말입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우리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된 사람의 특징은 바로 '전과 다르게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본문은 흉년을 당하여 베들레헴을 떠났던 나오미라는 여자가 참담한 불행을 십여 년 동안 당하고 나서 다시금 자기의 고향인 베들레헴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내용을 통해 우리는 나오미의 생활 속에서 세밀하게 간섭하신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음으로써 과거와 다르게 사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1. 하나님이 지적하는 세 가지 죄

그러면 먼저 하나님이 지적하는 죄가 무엇인가부터 살펴봅시다.

첫째, 자율주의의 생활이 죄입니다.

본문 말씀의 서두에는 "사사들이 치리 하던 때에"라고 기록되어있습니. 사사기 2125절에는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자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라고 말합니다. 사사시대는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던 자유주의 시대였고 바로 나오미와 엘리멜렉도 자율주의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신명기 73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은 가나안인이나 모압인, 이방인과 결혼할 수 없는 규정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 한번 해보지 않고 흉년을 만나 모압 땅으로 내려간 것은 물론, 자기의 두 아들을 모압 여인과 결혼시킨 자율주의의 생활은 하나님 없는 죄악 생활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우리도 교회생활이 힘들다고 세상으로 가버리면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 안에서 버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시면서 너희는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라고 부탁하신 후에 하나님을 향하여 기도했습니다.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드린 것은 오늘날 우리들의 생활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생활 이어야 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국 자율주의 생활이라는 것은 불신앙적 생활이라는 것을 이 본문 말씀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사시대에도 여호와 하나님은 있었습니다. 인간이 눈에 보이는 것을 보니 여호와 하나님이 보이지 않았던 것뿐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주님의 손길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번째로, 물질주의적 생활이 죄입니다.

본문 1절에 보면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유다 베들레헴의 한 사람이 그 아내와 두 아들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가서 우거 하였는데"라고 합니다. 엘리멜렉이 자기의 사랑하는 아내 나오미와 함께 물질주의적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21절을 보면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들은 흉년을 만나고 나서도 경제적으로 풍부한 생활을 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만 그들은 자기들의 경제적 부요를 흉년이라는 불경기라는 악조건 속에서 잃어버리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모압으로 내려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나의 재산을 지키려고 세상으로 가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야 살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백성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버리면 금방 문제가 생깁니다. 이제부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능력과 보호하심을 믿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물질 중심적인 생활이란 한마디로 돈을 사랑하는 생활입니다. 디모데전서 6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나오미와 엘리멜렉은 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러한 물질중심주의의 생활이 그들의 마음속에 일만 악을 범하는 죄악의 뿌리로 남아서 믿음 생활을 떠나 저 모압으로 가다가 큰 고통과 실의와 좌절을 맛보게 한 것입니다. 우리도 돈을 사랑하게 되면 영적으로 무디게 되고 타락의 길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스라엘 격언 중에는 "돈이라는 것은 지배하려고 들면 가장 좋은 종이다. 그러나 돈은 섬기기로 들면 가장 무서운 폭군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 풍족했던 나오미의 가정에 흉년이 왔을 때 나오미는 어떻게 해야 옳았겠습니까? 흉년이나 불경기가 온다 해도 베들레헴의 신앙의 자리를 떠나지 말고 하나님께서 그 베들레헴에 풍년을 다시 베풀어주시기를 기다렸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기다리지 않고 그 풍족한 삶을 손해보지 않으려고 모압 땅으로, 물질을 따라갔던 그들의 생활은 분명 죄악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심을 믿고 흉년의 때에 하나님이 다시 회복해 주실 것을 기다려야 합니다. 지금도 우리는 경제적인 흉년의 때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럴 때 우리는 십자가 복음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우상숭배가 죄입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가 살던 모압이라는 나라는 아브라함의 조카 롯과 그의 큰 딸 사이에서 태어난 모압이라는 아들이 자식을 번성시켜서 요단강 동편에 건설한 나라입니다. 그 땅에서는 그모스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나오미의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이 결혼한 룻과 오르바라는 여인들은 하나님을 모르는, 우상을 섬기던 자들이었습니다. 이들이 시집을 오니까 하나님을 믿던 가정에 우상의 그림자가 깊이 드리워지고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이 우상을 섬기는 가정으로 변화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명예와 권력과 정욕과 탐심이 지나치면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녀도 우상 숭배하는 자들과 결혼시켜서는 안 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와 결혼하여 개종시킨다고 하지만 말이 그렇지 쉽지가 않습니다. 자신의 믿음도 잃어버리게 됩니다. 우리는 결혼할 때 신중하게 생각하여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자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자 기도가 중요합니다.

 

2.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징계

여러분! 하나님의 백성이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간다면, 돈 때문에 신앙을 버리면, 하나님보다 이 세상의 것을 탐하는 생활을 하면, 하나님은 자기의 택한 백성이 그렇게 사는 것을 원치 않으시기 때문에 징계하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징계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두 가지 방법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징계하십니다.

첫째는 물질적인 방법으로 징계하십니다.

본문 21절에 보면 "내가 풍족하게 나갔더니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너희가 어찌 나를 나오미라 칭하느뇨 하니라"라고 합니다. 심한 경제적인 고통을 이 하나님의 사람 나오미가 당한 것을 보게 됩니다. 유명한 프레드릭 포시드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 세상에서 가장 강한 동기부여는 굶주림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굶주림만 주면 하나님께로 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업을 막으시고 경제적인 축복을 거두어 가시고, 배신당하고 거절당하고 넘어지게 하시고... 물질적인 고통은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을 징계하시기 위해 사용하는 도구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경제적으로 굶주리지 않게 해 주실 때 감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축복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을 잘 섬기고 감사하면서 주님 편에 있어야 합니다.

둘째는, 죽음의 고통을 이용하십니다.

본문 3절과 5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람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었습니다. 10년 후에 결혼을 한 두 아들 말론과 기룐도 죽었습니. 왜 죽었을까요" 질병 때문일까요? 오늘날 하나님께서 자기의 백성이 올바로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자꾸만 세상으로 나갈 때에 때로는 질병의 고통과 괴로움을 주십니다. 병은 세가지 때문에 옵니다.

첫째는 건강관리를 잘못해서 오는 경우가 80%이고,

둘째는 귀신이 병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징계 때문에 병이 옵니다. 오늘 본문의 말론과 기룐은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얼마 후에 죽은 것으로 보아 병 때문인 것 같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징계받지 않고 여호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 큰 축복인 것을 이 시간 깨달아야 합니다.

 

본문 4절에 보면 "거기 거한 지 10년쯤에.."라고 합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징계가 한순간에 온 것이 아니라 십 년 동안 징계가 계속되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택한 백성이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으면 십 년, 이십 년, 계속 징계를 주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현재 어떤 징계를 받고 있는지 생각하고 빨리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시기를 바랍니다.

 

3. 깨달음을 얻게 하는 징계

하나님이 이렇게 징계하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첫째는 우리 그리스도인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12:6, 10). 두 번째는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우리에게 유익을 주시기 위함입니다(12).

 

하나님께서는 나오미를 징계하심으로써 나오미에게 가르쳐 주시고자 하는 것이 있습니다. 즉 과거와 다르게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의 징계는 받기 전과 제발 좀 다르게 살아가라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시 말하면 불신앙적으로, 세상적으로 살던 나오미에게 하나님께서 징계를 주심으로써 하나님을 중심으로 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지금 나에게 경제적인 징계나 질병이 징계나 자식의 징계나 배우자의 징계나 사업의 징계를 하고 있다면 빨리 깨닫고 하나님께로 오라는 사인이니 빨리 회개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징계는 계속해서 이루어지게 됩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말하기를 "고통은 서재에 있는 많은 책 중에서 가장 좋은 책이다"라고 했습니다. 징계를 받는 것은 고통스럽습니. 그러나 욥기 517절에 "볼지어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런즉 너는 전능자의 경책을 업신여기지 말지니라"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는 것은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징계는 시련 자체로 끝납니까?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징계를 받으면 큰 축복을 받게 됩니다. 그 축복은 바로 깨달음입니다. 헨리라는 사람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심판을 주시고 징계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심, 능력과, 지혜, 고귀하심을 깨닫게 하기 위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까 징계를 받을 때 깨달으면 징계가 끝난다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면 자꾸 하나님이 때리십니다. 호세아서 414절에는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느니라"라고 합니다. 깨달으면 안 망합니다. 나오미는 자기의 잘못을 깨닫고 보니까 모압 나라, 멸망의 나라에서 나오게 되었으니 축복이 아닙니까? 이 나오미는 무엇을 깨달았습니까?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4. 깨닫는 자에게 주시는 복

본문 13절에 보면 "여호와께서 나로 비어 돌아오게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나를 징벌하셨고 전능자가 나를 괴롭게 하셨거늘"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를 때려서 매를 맞게 된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즉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나서야 다시금 회복된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입니. 깨닫는 신앙이 성숙한 신앙입니다. 그렇습니다. 설교할 때 설교가 깨달아지는 사람, 신앙이 자란 장성한 신자입니다. 장성한 신자가 아니면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나 깨닫는 사람은 설교가 쏙쏙 들어옵니.

나오미는 하나님의 징계의 원인이 자기의 죄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 자기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징계의 채찍을 주셨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니까 이래서는 '안 되겠다. 모압을 떠나서 베들레헴으로 돌아가야겠다'라고 돌아오려는 의지가 강하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그 깨달음을 생활에 옮기는 의지도 생깁니다. 교인들 중에 어떤 사람은 설교를 들을 때마다 마음으로는 새벽 기도도 나오고 신앙생활도 잘해야지 라고 작정은 합니다. 그러나 실천하지 못하는 것은 왜입니까? 의지력이 약하기 때문입니다. 이 의지력은 하나님이 뒷받침해주셔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 때에 고통도 있고 괴로움도 있습니다. 이런 고통과 괴로움은 하나님이 우리를 성숙한 신앙인으로 이끌어 주시려는 계획의 일부라는 사실을 깨달으십시오. 신앙의 의지를 재확인하고 일어나십시오. 이 시간 하나님께서 징계하셨다면 깨달음도 함께 주십니다. 깨닫고 나면 하나님이 축복하셔서 상처를 싸매 주십니다. 이제 영적으로 일어나 믿음을 굳건히 세우고 힘 있게 신앙생활을 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임한 모든 징계와 고통이 축복으로 변화되는 역사가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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