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리바스가 욥에게 네가 잘못하여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이라고 말하지 욥은 결백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도 않고 말씀을 거역하지도 않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 열심히 번제를 드리고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합니다. 욥은 엘리바스의 말을 질책하고 있습니다.
욥-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지 않았다(욥 6:1-30)
[1-7절] 욥이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분한을 달아 보며 나의 . . . .
욥의 대답이다. “나의 분한(카아스)[고통]을 달아 보며 나의 모든 재앙을 저울에 둘 수 있으면 [좋겠도다. 이는 그것이] 바다 모래보다도 무거울 것이라[것임이로다]. 그러므로 하여 나의 말이 경솔[성급]하였구나. [이는] 전능자의 살이 내 몸에 박히매 나의 영이 그 독을 마셨나니 하나님의 두려움이 나를 엄습하여 치는구나. 들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싱거운 것이 소금 없이 먹히겠느냐? 닭의 알 흰자위가 맛이 있겠느냐? 이런 것을 만지기도 내 마음이 싫어하나니 못된 식물같이 여김이니라.”
욥의 고난은 재산의 상실, 자녀들의 죽음, 몸의 병이었다. 이것은 전능자의 화살이며 하나님이 주신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고난이었다. 즉 욥은 하나님의 절대적 주권을 인정하였다. 욥은 하나님께서 주셨다가 하나님께서 취하셨다고 고백했었고(1:21),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고 하나님께서 재앙도 주신다고 고백했었다(2:10).
그러면 해결책도 하나님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재앙에서 그를 구원하실 수 있고, 하나님께서는 그의 형편을 회복시키실 수 있고, 또 하나님께서는 복을 다시 주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 32:39에서, “이제는 나 곧 내가 그인 줄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내 손에서 능히 건질 자 없도다”라고 말씀하셨다.
[8-13절]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 . . .
욥은 또, “하나님이 나의 구하는 것을 얻게 하시며 나의 사모하는 것 주시기를 내가 원하나니 이는 곧 나를 멸하시기를 기뻐하사 그 손을 들어 나를 끊으실 것이라”고 말한다.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 하나님께서 자기 생명을 끊으시고 데려가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는 사람의 생명이 하나님의 것이며 사람이 스스로 자기 목숨을 끊어서는 안 됨을 알고 있었으므로 하나님께 간구한 것이다.
욥은 또 말한다. “그러할지라도[나를 죽게 하실지라도] 내가 오히려 위로를 받고 무정한[무자비한, 혹독한] 고통 가운데서도 기뻐할 것은 내가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거역지(카카드)[부인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 내가 무슨 기력이 있관대 기다리겠느냐? 내 마지막이 어떠하겠관대 오히려 참겠느냐? 나의 기력이 어찌 돌의 기력이겠느냐? 나의 살이 어찌 놋쇠겠느냐? 나의 도움이 내 속에 없지 아니하냐? 나의 지혜[성공](NIV)가 내게서 쫓겨나지 아니하였느냐?”
욥은 혹독한 고통 중에서도 위로를 받고 기뻐한다고 고백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위로요 기쁨이다. 그것은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부인하지 않은 까닭에 얻은 위로와 기쁨이었다. 시편 119편의 저자도 “[하나님의 말씀은] 나의 곤란 중에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음이니이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라고 고백하였다(시 119:50, 92). 성도에게는 위로와 기쁨의 비밀이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이 주는, 신비한 위로와 기쁨이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이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도 넘치는 기쁨을 가졌고 극한 가난 속에서도 풍성한 연보를 하였다고 증거하였다(고후 8:2).
[14-23절]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 . . .
욥은 말한다. “피곤한 자 곧 전능자, 경외하는 일을 폐한 자를 그 벗이 불쌍히 여길 것이어늘 나의 형제는 내게 성실치 아니함[거짓되이 행함]이 시냇물의 마름 같고 개울의 잦음 같구나.”
욥은 지금 피곤해 있고 하나님을 경외함을 포기할 지경에 있다. 그러나 그를 위로하러 온 그의 친구들은 그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 그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마치 우기(雨期) 외에는 말라 있는 시내(와디 wadi라고 부름)와 같다.
욥은 또 말한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검어지며 눈이 그 속에 감취었을지라도 따뜻하면 마르고 더우면 그 자리에서 아주 없어지나니 떼를 지은 객들이 시냇가로 다니다가 돌이켜 광야로 가서 죽고[그 길들은 굽어지고 없어지는도다](KJV, NASB). 데마의 떼들이 그것을 바라보고 스바의 행인들도 그것을 사모하다가 거기 와서는 바라던 것을 부끄리고[바라던 것 때문에 부끄러워하고] 낙심하느니라. 너희도 허망한 자라. 너희가 두려운 일을 본즉 겁내는구나. 내가 언제 너희에게 나를 공급하라 하더냐? 언제 나를 위하여 너희 재물로 예물을 달라더냐? 내가 언제 말하기를 대적의 손에서 나를 구원하라 하더냐? 포악한 자의 손에서 나를 구속(救贖)하라 하더냐?”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일진대 고난당하는 친구를 동정해야 할 것이다. 그들은 상대방의 마음과 그의 고통스런 처지를 이해하고 같은 마음과 감정을 가져야 할 것이다. 사도 바울은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하였고(엡 4:32), 사도 베드로는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체휼하며[같은 감정을 가지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라”고 교훈하였다(벧전 3:8).
[24-30절]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 . . .
욥은,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 내가 잠잠하리라. 옳은 말은 어찌 그리 유력한지. 그렇지만 너희의 책망은 무엇을 책망함이뇨? 너희가 말을 책망하려느냐? 소망이 끊어진 자의 말은 바람 같으니라. 너희는 고아를 제비 뽑으며 너희 벗을 매매할 자로구나”라고 말한다.
욥은 친구들의 책망이 잘못된 책망이라고 말한다. 그는 남의 허물을 구체적으로 지적함이 없는 막연한 책망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그는 “내게 가르쳐서 나의 허물된 것을 깨닫게 하라”고 말한다. 또 그는 남의 말꼬리나 잡는 책망도 잘못이라고 말한다. 절망하는 자의 말은 바람 같은데 그 말꼬리나 잡고 책망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한다. 또 그는 그들의 책망이 동정심이 없는 책망이라고 지적한다. 그는 “너희는 고아를 제비뽑으며 너희 벗을 매매할 자”라고 말한다.
우리가 남을 책망하려면 그의 허물을 정확히 알고 지적하는 책망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결코 상대방의 말꼬리나 잡는 자가 되지 말고 그의 말의 중심내용에 대해 논하며 잘못된 점을 책망해야 할 것이다. 또 우리의 책망은 동정심을 가진 것이어야 할 것이다.
욥은 자신의 의로움에 대해 확신한다. 그는 말한다. “이제 너희가 나를 향하여 보기를 원하노라. 내가 너희를 대면하여 결코 거짓말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돌이켜 불의한 것이 없게 하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돌이키라. 내 일이 의로우니라. 내 혀에 어찌 불의한 것이 있으랴. 내 미각이 어찌 궤휼을 분변치 못하랴.”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4장에서 자신이 자책할 아무것도 깨닫지 못한다고 고백하였다(고전 4:4). 우리는 자책할 것이 없을 때 담대함을 얻을 것이다(요일 3:21).
우리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알자. 우리는 우리의 모든 현실이 하나님께서 주신 현실로 깨닫자. 나의 평안과 행복을 내가 이룬 것이라고 생각지 말고 나의 고난을 남의 탓으로 돌려 원망과 불평을 하지 말자. 우리는 범사에 하나님을 인정하고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자.
우리는 죄를 멀리하고 양심에 거리낌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자책할 것이 없는 의로운 삶을 삶으로써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얻자.
우리는 계산적이고 이해타산적이거나 기회주의적이지 말고, 변함없는 참 사랑과 동정심을 가지고 고난당하는 이웃을 불쌍히 여기고 위로하고 구제하자. 또 우리는 남에게 잘못된 권면이나 책망을 하지 말자.
[레위기 6장 히브리어 원어 강해] 여호와께 드리는 번제 규례(레 6: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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